"덤보 파이팅!" "남달라 파이팅!" "이정민 파이팅!"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금 랭킹 1~3위가 한조에서 맞붙은 조선일보-포스코 챔피언십(총상금 7억원) 1라운드. 최고 스타 전인지(21)·박성현(22)·이정민(23)의 코스 안 대결만큼이나 '장외 경쟁'도 뜨거웠다. 부슬비가 내린 경기도 용인의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서코스(파72·6619야드) 1번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세 선수의 이름이 차례로 불릴 때마다, 팬들이 입을 모아 미리 약속해둔 응원 구호를 외쳤다.

13일 경기도 용인 레이크사이드 골프클럽에서 열린 KPLGA 조선일보-포스코 챔피언십. ‘상금왕 조’에서 함께 경기한 박성현(왼쪽)과 전인지가 10번 홀 그린에서 퍼팅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이날 이정민을 포함한 ‘상금왕 조’ 선수들은 서로 거의 말을 나누지 않은 채 팽팽한 긴장감 속에 경기를 진행했다.

'덤보'는 만화에 등장하는 아기 코끼리 이름으로, 전인지의 별명이다. '남달라'는 박성현이다. 성공하려면 남과 달라야 한다는 뜻으로 골프백에 스스로 새긴 것이 팬클럽 이름이 됐다. 온종일 비가 내린 쌀쌀한 날씨에도 노란 모자를 맞춰 쓴 전인지 팬클럽과 파란 모자를 쓴 박성현 팬클럽, 감색 모자를 쓴 이정민 팬클럽 회원들은 선수들과 함께 18홀을 돌았다.

전인지 팬클럽은 노란부대 - 대회장에 노란색 모자가 모여 있다면 틀림없이 전인지 팬클럽이다. ‘플라잉 덤보’의 응원 모습.

KLPGA 투어가 인기를 누리면서 '팬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특급 스타들의 팬클럽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청소년 팬들이 아이돌 가수 따라다니듯, 40~50대 중년이 골프 스타를 열렬히 응원한다. 지역별로 지부를 두고, 대회가 열리면 단체로 차량을 빌려 이동한다. '단체 펜션 숙박 응원'도 한다. 팬클럽 상징 색 모자를 수십~수백 명씩 맞춰 쓰고 나타나 장관을 이룬다. '팬클럽 열풍'을 이끈 대표 주자는 전인지다. 온라인 팬카페 회원 수가 5300명이다. 남녀 성비가 8대2로 40~50대 남성 회원이 절대다수라고 한다. 의사·변호사·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도 많다. 전인지는 이날 대회 1라운드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대회장에 오는 길에 팬 카페 회원들이 올려주신 글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며 "몸 상태를 걱정해주시는 내용을 읽으며 정말 행복하고 힘이 났다"고 했다.

올해 3승을 거두며 '신데렐라'로 떠오른 박성현은 팬클럽이 생긴 지 4개월밖에 안 됐지만 회원 수가 670명까지 급증했다. 보이시(boyish)한 매력에 빠진 여성 팬이 많아 남녀 성비가 4대6 정도라고 한다. 팬클럽 관계자는 "남성 팬이 외로움을 느낄 정도"라고 했다. 박성현은 회원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친목을 다진다.

고진영은 핫핑크죠 - 고진영(가운데)을 상징하는 ‘GO’를 새긴 모자와 고진영이 좋아하는 핫핑크색 옷을 입은 팬클럽.

선수 성향에 따라 팬클럽 특성도 다르다. 올해 3승을 올린 고진영(20)은 평소 대담한 플레이처럼 팬클럽 회원들에게도 솔직하고 친근하게 다가간다. 팬클럽 회장인 최신식(48)씨는 "올해 초 고진영 프로가 '저는 메이저 우승을 할 테니, 삼촌은 체중을 줄이시라'고 해 서로 약속을 맺었다"고 말했다. 작년 말엔 팬클럽 송년회를 스크린골프장에서 열어 고진영이 회원들에게 일일이 원포인트 레슨을 해줬다.

모자에 정민 새기고 - 이정민 팬클럽 ‘정민마니아’ 회원들이 ‘정·민’ 두 글자를 모자에 붙인 채 이정민을 응원하는 모습.

올 시즌 3승을 달성한 이정민은 차분하게 경기에만 집중하길 원한다. 팬클럽 회원들이 경기요원처럼 'QUIET(조용히)' 피켓을 들고 갤러리 문화 선도에 앞장선다. 자기 지역 특산물을 담은 도시락도 이정민에게 전달한다. 이정민은 직접 쓴 손편지로 감사를 전한다고 한다.

김해림과 팬들, 봉사활동도 함께 - 김해림(왼쪽 맨 앞) 팬클럽은 선수와 함께 기부를 실천한다. 선수와 회원이 함께 연탄 배달 봉사를 하면서 찍은 사진.

올 시즌 대상 포인트 랭킹 3위에 오른 김해림(26)은 KLPGA 투어에서 유일한 '아너 소사이어티' 멤버(사회복지공동모금회 1억원 이상 기부자)다. 2009년 투어 데뷔 이후 아직 우승이 없지만 상금의 10%씩을 기부해왔다. 그의 팬클럽 역시 기부에 동참한다. 김해림이 버디를 할 때마다 회원들이 각자 1000원씩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쓴다. 작년 말엔 다 함께 연탄 배달 봉사도 했다.

KLPGA 팬클럽들은 '선수에게 방해가 되는 활동은 하지 말자'는 원칙을 지킨다. 선수와 함께 식사를 할 때도 자리를 빨리 마무리해 선수가 쉴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정민 팬클럽 회장인 정희용씨는 "우리는 응원만큼이나 갤러리 문화에도 신경을 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