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누리 과정(만 3~5세 무상 보육) 예산을 놓고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서로 "예산을 부담 못하겠다"고 버티는 '보육 예산 떠넘기기'가 2년 연속 벌어지고 있다. 무상 복지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정부는 '무상 복지 예산을 늘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국고 지원 거부 방침을 고수한 반면 시도 교육청은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10일 교육부와 각 시도 교육청에 따르면 내년도 필요한 누리 과정 예산 4조44억원 가운데 시도 교육청이 예산안에 반영한 액수는 1조9567억원(본예산 계획)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대로라면 내년 예산 중 절반 이상(51%)인 2조477억원이 '펑크' 난 상황이다. 내년 부족한 예산 약 2조원은 빚(지방채)을 내서 충당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올해 누리 과정 예산도 1조5000억원이 부족해 이 중 1조원은 지방채, 나머지 약 5000억원은 국고(목적예비비)로 해결한 바 있다.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2년 연속 보육 예산 '핑퐁 게임'을 벌이면서 보육 정책 자체가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중 13명의 진보 교육감들이 이 보육 전쟁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누리 과정은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이니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며 내년 누리 과정 어린이집 예산을 1원도 반영하지 않았다.

[내년 누리과정 예산 2兆 부족, 박근혜 정부는 "지방 재정으로" ]

서울시교육청도 10일 '2016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어린이집 보육료를 예산으로 편성하면 노후 교육 시설 개선을 비롯한 각종 사업을 지원하기 어렵게 된다"며 "내년 누리 과정 예산 가운데 어린이집 보육료 3800억원 전액을 편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완강한 입장이다. '누리 과정 지원은 지방재정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한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근거로 "국고에서 전혀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무상 보육과 같은 핵심 교육 사업은 교육감이 최우선적으로 예산에 편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보육 정책을 이처럼 떠넘기기 하는 사태가 2년째 빚어지면서 교육계에선 "어차피 시행해야 할 정책이라면 국고에서 지원하든 지방재정으로 부담하든 지원 주체와 방식 등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보수 정부와 진보를 표방하는 시도 교육청이 치사한 '정치 게임'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도 교육청이 빚(지방채)을 내서 충당하는 것은 "결국 현 세대가 져야 할 복지 부담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상 복지 경쟁이 낳은 누리 과정

누리 과정은 2010년 진보 교육감들의 무상 급식 논쟁 등 무상 복지가 정치권의 화두가 되면서 도입됐다. 2011년 5월 이명박 정부는 만 5세에 누리 과정을 2012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고, 2013년부터는 만 3~4세로 시행 범위를 확대했다. 당시에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국고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으로 누리 과정 예산을 분담하고, 2015년부터는 전액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세수(稅收) 증가세가 둔화돼 교부금 증가 액수가 예상보다 늘지 않자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는 교부금 총액이 1조5000억원이나 줄면서 시도 교육청의 살림살이가 더 빠듯해졌다.

어린이집 누리 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는 교육감들은 "정부의 공약인 누리 과정을 교육청 재정에 떠넘겼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3개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중앙정부와 갈등이 본격화했다.

◇누리과정 갈등으로 학부모 불안

서울(1377억원)·경기(2382억원) 등 올해 17개 시도 교육청이 누리 과정을 위해 발행한 지방채는 약 1조원 규모다. 교육 당국은 내년 누리 과정 예산 부족분 약 2조원도 결국 지방채를 발행해 풀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5일 "누리 과정 예산 문제는 2018년에는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내수(內需)가 살아나면서 지방재정에 여유도 생길 것으로 보이고, 학령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누리 과정 예산은 단계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다.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27%로 규정돼 세수에 따라 교부금 액수가 달라지는 구조다. 하지만 시도 교육감들은 "국가가 전액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남도에서는 진보 성향 교육감과 보수 도지사가 누리 과정 예산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경남교육청이 편성하지 않은 어린이집 누리 과정 예산을 경남도가 직접 편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도에서 누리 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대신 교육청에 주는 교육비 특별회계 전출금을 그만큼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누리 과정 예산을 놓고 갈등이 커지는 동안 만 3~5세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내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녀는 누리 과정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고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누리과정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 모든 아동에게 교육비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책. 취학 전 모든 아동이 질 높은 교육을 받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2012년 만 5세 아동을 대상으로 처음 시작했고, 2013년 만 3~4세로 확대됐다. 아동 1인당 유치원·어린이집 비용 월 11만~29만원을 예산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