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칼럼니스트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서 파마를 한 것처럼 부풀려주는 기구인 '헤어롤(일명 구루프)'은 영국에선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다. 내가 어릴 때 동네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으면 머리를 말고 있던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야단을 치던 기억이 난다. 머리엔 항상 헤어롤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였다. 하지만 이젠 영국 여성들은 헤어롤을 쓰지 않는다.

기묘한 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줄로만 알았던 헤어롤을 요즘 한국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단 점이다. 앞머리를 기른 여자들은 모두 이 독특한 외양의 물건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애지중지하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 헤어롤로 머리를 말고 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헤어롤로 머리를 곱게 말아올리고 손거울을 보며 완벽하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그쯤 되면 묘기 수준이었다.

지하철에서만 이런 여성이 목격되는 건 아니다. 농구장이나 야구장, 학교 교실, 회사 화장실 등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심지어 서울 광화문 대로 한복판에서 남자 친구의 팔짱을 끼고 걷는 여성의 머리에 헤어롤이 달려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방송이 이런 헤어롤 사랑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올해 초 한 지상파 방송에서 인기 걸그룹 EXID의 하니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공장소에서 헤어롤로 머리를 마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땐 "저렇게 예쁜 연예인이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마는 모습이 참 털털해 보여서 좋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니는 그 후 '예쁜데 털털한 여자아이' 캐릭터로 승승장구 중이다. 그런데 정말 그 모습이 털털해서 보기 좋은 건가.

한국 여성들이 정말로 그렇게 헤어롤로 부풀린 머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아니면 헤어롤을 머리에 달고 다니는 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유행하는 패션이 된 것일까. 이러다가 결혼식에서 머리에 헤어롤을 단 신부를 보게 되는 날이 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