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코치 때보다 훨씬 더 좋네요."
두산 김태형(48) 감독이 KBO리그 사상 처음으로 한 팀에서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한국시리즈 챔피언 트로피를 들었다. 1995년엔 선수, 2001년엔 플레잉코치, 올해는 감독으로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취임 첫해 정상 등극에 성공하면서 김응용(1983년 해태), 선동열(2005년 삼성), 류중일(2011년 삼성)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데뷔 시즌 우승을 일군 감독이 됐다. 사상 세 번째 '3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그는 "나는 아직 부족한 게 많은 감독"이라며 "스스로 뭉쳐서 잘해준 선수들 덕분에 정상에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형 감독은 '베어스 맨'으로 통하는 지도자다. 1990년 두산의 전신 OB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해 12시즌을 포수로 뛰었다. 선수 시절 성적(통산 타율 0.235·9홈런)은 특출나지 않았다. 반면 선수단을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남달랐다. 체구(키 173㎝)는 작았지만 화를 내면 무서워 별명이 '불곰'이었다. 포수 시절 투수가 사인에 고개를 저으면 마스크를 벗고 눈을 부릅뜨며 의견을 관철시켰다. 주장을 맡았을 땐 튀는 행동을 하는 거구의 타이론 우즈를 라커룸 구석으로 데려가 커튼을 치고 혼내 팀에 녹아들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플레잉코치로 뛴 2001시즌을 포함해 11년간 두산의 코치로 일했다. 2011년 말 SK의 배터리코치를 맡아 팀을 옮겼다가 지난해 10월 친정으로 돌아와 지휘봉을 잡았다. 구단에선 "두산의 허슬 야구를 살릴 수 있는 지도자"라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김태형 감독은 사령탑에 오르자마자 "SK 코치할 때 두산 선수들이 지고 있는데도 상대와 농담하고 웃는 모습을 많이 봤다"며 "이런 건 두산의 팀 컬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의식 개혁을 외쳤다.
김태형 감독은 올해 초 스프링캠프 때부터 자신의 취임 일성을 행동으로 옮겼다. 선수들에게 훈련장에서 다른 훈련장으로 이동할 때 뛰어갈 것을 지시했다. 개막 후에는 내야 땅볼이나 외야 뜬 공을 쳐도 전력을 다해 1루로 달려가라고 명령했다. 느슨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있으면 바로 '채찍'을 들며 팀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홍성흔은 "한번은 외야 뜬공 치고 1루로 설렁설렁 뛰어갔는데 감독님이 바로 '야, 홍성흔! 너 야구 그만하고 싶어?'라고 호통을 쳤다"고 말했다.
대신 기본에 충실하면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다. 경기 중에는 주로 "편하게 하라"는 이야기만 했다. 공격이 안 풀리면 세밀한 작전 대신 오히려 "초구부터 쳐라"고 독려했다. 이런 스타일 탓에 정규 리그에서 고전할 당시엔 "무념무상의 상태로 경기하는 거냐"는 팬들의 비아냥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감독이 말을 많이 하면 선수들이 긴장해 자기 플레이를 못 한다'는 지도 철학을 지켰다. 점차 규율과 자율이 조화를 이루면서 두산은 올해 외국인 선수의 연이은 부상과 부진에도 작년 정규 리그 순위(6위)보다 세 계단 뛴 3위에 올랐다.
'가을 야구'에선 오랜 안방마님 경험으로 기른 여우 같은 면모도 보였다. 경기의 승부처라고 판단하면 마무리 투수 이현승을 9회가 아닌 7·8회에 투입하면서 상대 숨통을 조였다. 중견수 정수빈이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손가락을 다치자 지명 타자로 활용하는 묘수를 발휘했다. 경험 많은 베테랑이라도 부진하면 과감히 라인업에서 제외해 불안 요소를 없앴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곰의 탈을 쓴 여우 같았다"며 "투수 교체나 작진 지시하는 걸 보면 초보 감독답지 않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