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발표한 후 가장 당혹스럽고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 사회의 오랜 과제였던 역사교육 문제가 여야 간 정쟁 대상이 돼버린 점이다. 정부의 결정은 '반(反)대한민국'이라는 비판을 받는 국사 교과서들이 역사교육 현장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대한민국 헌정(憲政) 질서 안에서 활동하는 정당이라면 여야를 막론하고 함께 고민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머리를 맞댄 진지한 논의는 없이 마치 사활을 건 듯 치열한 공방만 거듭하고 있다.
먼저 방향을 잘못 잡은 쪽은 새누리당이었다. 주무 부서인 교육부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집권 여당이 앞장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가 '국사학자의 90%가 좌파'라고 거듭 말하고, 여당이 마련한 강연에서 "국사학자들은 무식하니 교과서 필진에서 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국사학계 자체를 문제 집단으로 간주하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지나쳤다. 현대사 연구자는 좌파가 많지만 국사학계 전체로는 좌파가 다수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국정교과서는 국사학자들의 참여 없이는 좋은 책을 만들 수 없다. 명분론이 유독 강한 국사학자들인데 명예와 자존심까지 건드리니 '국정화 반대'로 몰려간 것이다. '역사교육 정상화'라는 대의에 공감하는 학자들까지 집필 참여를 망설이게 만든 데 대해 여당은 반성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태도는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좌편향 검정 교과서 필진, 그 배후에 있는 민중사학 진영과 연계돼 움직이는 것은 그렇다 쳐도 지도부까지 부화뇌동하는 것은 국가 운영을 책임지겠다는 제1 야당의 자세가 아니다. 검정 한국사 교과서들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국정교과서를 '친일·독재 미화'로 단정하는 것은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기본자세가 돼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나라의 장래가 걸려 있는 역사교육 문제를 국사 교과서 한번 제대로 펼쳐보았는지 의심스러운 정치권에 계속 맡길 수는 없다. 오는 5일 확정 고시를 계기로 국면을 바꾸어야 한다. 문재인 대표는 사회적 논의 기구 구성을 제안했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끝없는 공방만 계속하는 사회적 논의가 아니라 '역사교육 정상화'의 구체 방안에 대해 사회적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여당은 실무를 담당할 국사편찬위원회와 전문가들에게 맡기자고 하지만 '밀실 작업'이 될 경우 앞으로도 계속될 야권과 일부 학계의 파상 공세에 수세적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정치권은 그만 빠지고 역사교육의 좌편향을 우려해 왔던 사회 원로·중진, 신망있는 각계 인사들이 역사교육 정상화를 주도해야 한다. 토론회, 공청회 등을 통해 국정교과서 제작을 국민 통합 과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국정이냐 검정이냐는 본질이 아니다. 양자 모두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 그러므로 이제 결론이 난 이상 방법론에 대한 이견(異見)을 접고 '역사교육 정상화'를 향해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우리 2세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게 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사려 깊은 국사학자들의 소명감과 대승적 결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