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단 한 번 만난 '솟대문학' 발행인 방귀희씨에게서 편지가 왔다. 1년에 네 번 발간해온 이 장애인 문학지가 통권 100호(號)를 맞았고 이제 중단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25년 동안 끌어온 것을 본인은 '기적(奇跡)'이라고 표현했다.
언론 매체에서는 이 소식을 별로 취급하지 않았다. 뉴스 가치가 없을 것이다. 이런 데까지 관심 두겠는가. 대중은 늘 똑같은 소리인 정치판 평론에 중독돼 있고, 불륜 스캔들에 휘말린 K 변호사와 '도도맘'이라는 여성에게나 우르르 몰려갈 뿐이다. 하지만 나는 사사로운 인정(人情)에 매여 '방귀희 스토리'를 한 줄 기록하기로 했다.
5년 전 '솟대문학'이 80호를 냈을 때 그녀를 만났다. 신문사로 찾아온 그녀가 차에서 내려 외부 계단에서 업혀 들어온 뒤 휠체어로 갈아타던 장면이 생생하다. 지체장애 1급이었다.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사지(四肢) 중에서 오른팔만 쓸 수 있었다. 그녀는 "남들처럼 뛰고 싶다는 건 너무 욕심이고 내 두 팔로 사람을 안을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력(履歷)에는 무학여고 수석 입학과 동국대 수석 졸업이 있었다. "호호. 이 몸으로 공부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었으니까"라며 그녀는 슬쩍 자랑을 덧붙였다.
"대학 수석 졸업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타는 몸으로 대학에 들어간 사람도 제가 처음이었어요. 당초 경희대 한의학과에 가려고 했지만 안 받아줘 동국대에 입학했어요. 제가 76학번인데 그 시절만 해도 그랬어요. 1981년 수석 졸업 하자 매스컴에 크게 보도됐어요. 마침 그해가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해'여서 방송사에서 많은 출연 요청을 받았어요."
그런 인연으로 그녀는 방송 작가 일을 하게 됐다. 당초 그녀의 꿈은 대학에서 교수로 남는 것이었다. 하지만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 시험에만 여덟 번 떨어졌다.
"어느 날 교수님이 저를 불러 '시험을 그만 치라'고 했어요. 그렇게 따랐어요. 제가 실력 없어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까요(그녀는 뒷날 박사 학위를 땄고 현재 대학에 출강 중임)."
방송 작가 10년 차 시절 그녀는 라디오의 장애인 관련 프로그램을 맡았다. 비록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씩씩한 그녀는 방송에 사연을 보내온 장애인들을 직접 찾아가 인터뷰했다.
"이들은 저마다 일기(日記)처럼 자신의 글을 쓰고 있었어요. 세상을 향한 자신의 존재 증명과 같았어요. 남들에게 읽히려면 어디엔가 실려야 했어요. 요즘에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가능하지만 그때는 이들에게 전혀 매체가 없었어요."
그녀가 '솟대문학'을 만들게 된 계기였다. 처음에는 후배 사무실에 책상 하나 놓고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2층이었다. 그녀는 쉽게 올라갈 수 없었다. 후배가 우편 배달된 원고를 그녀의 차에 실어주면 집에 들고 가 밤새 읽었다.
"잡지를 만드는 데 한 번도 원고(原稿)가 모자란 적은 없어요. 대부분 볼펜으로 삐뚤삐뚤하게 쓴 글이에요. 뇌성마비를 앓는 분은 컴퓨터 자판을 혓바닥으로 쳐 썼어요. 그분의 시 중에는 '나는 오늘도 혀로 산다. 혀로 세상을 산다/ 혀로 컴퓨터를 하고 혀로 쇼핑도 하고/ 혀로 흘러가는 세월 구경도 하고…'라는 것도 있었어요."
'솟대문학'은 상대적으로 작품 수준은 물론이고 편집이나 종이질에서 떨어졌다. 정가(定價)가 붙어 있으나 팔릴 리가 없었다. 1500부를 찍어 회원들과 도서관 등에 무료로 보내줬다. 하지만 필자들에게는 장당 5000원씩 원고료를 지급했다. 이 잡지에 애정을 보였던 구상(具常) 시인이 타계할 때 기부한 유산 2억원으로는 신인상과 최우수상에 100만원과 300만원씩 상금도 줬다.
"비장애인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나, 잡지가 좀 늦게 나오면 '도착할 때가 됐는데 왜 안 오느냐' '이번에 발행이 안 된 줄 알고 깜짝 놀랐다'는 전화가 걸려와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따로 녹음 도서를 만들어 보내줬어요."
한 호(號)당 정부 지원 400만원을 받았지만 그걸로는 어림없었다. 이 지원마저 올해까지다. 기업 광고도 한두 개가 고작이었다. 어떻게 감당해왔느냐고 물었을 때 "만날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따로 돈 쓸 데가 많지 않다. 여행도 안 가고 부양할 가족도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렇게 악전고투하듯이 통권 100호를 채웠던 것이다. 종언(終焉)을 알리자 홈페이지에는 회원들이 월 1만원씩 내서 '솟대문학'을 살리자는 구명의 글들이 올라왔다. 바람이지 현실적으로 이뤄질 리 없다. 이걸로도 충분했다. 물론 오십대 후반의 그녀는 여전히 장애인들을 위한 다른 일을 모색하고 있다.
세상은 힘센 정치인과 관료, 재벌, 좋은 말만 하는 유명 인사보다는 방귀희씨 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과거보다 전진해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