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교육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공교육 과정에 인성 관련 요소를 강화해야 하지만, 참고할 만한 사례나 효과적인 매뉴얼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성 교육은 별도 교과목으로 추가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각 교과에 인성과 관련한 지문을 활용하는 등 학업 방향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교육 전문가의 전망이 이어지고 있어 학부모들이 학교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한발 앞서 특별한 커리큘럼으로 인성 수업을 진행해 호평을 얻었거나 현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학교 현장을 살펴봤다.

서울 명일초 인성수업에서 학생들은 철학 동화를 읽은 뒤 자유롭게 의견을 쓰고 발표하며 투표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한다.

◇철학 동화 통해 예·효 일깨워

"정직한 대통령이 최고예요!" "지혜로운 대통령요!"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 명일초 돌봄교실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통령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묻는 윤현주 방과후교사를 향해 학생들이 저마다 손을 들어 의견을 쏟아냈다. 매주 화요일 방과 후 초등 1학년부터 2학년까지 총 22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이곳에서 진행하는 인성 수업의 모습이다.

이신영 기자

총 8주간 진행되는 인성 수업의 콘텐츠는 철학 동화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스테디셀러 철학 동화 '작은 철학자'(소리봄) 시리즈 108권 중 한 권을 읽은 뒤, 책에서 배운 인성 가치를 미술·글짓기·체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나와 공동체'에 적용해보는 방식이다. 교육부가 인성의 핵심 가치로 제시한 여덟 덕목인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위주로 만들었다.

이날은 '싹이 트지 않아요'를 읽고 학생들이 각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동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왕이 꽃씨를 어린이들에게 나눠주면서 꽃을 가장 예쁘게 피워내는 이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제안한다. 얼마 후 아이들이 앞다퉈 멋진 화분에 아름다운 꽃을 담아냈다. 한 산골 소녀만이 풀죽은 목소리로 왕에게 "싹이 트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왕이 된 사람은 이 소녀였다. 사실 사람들이 받은 것은 싹을 틔울 수 없는 '볶은 씨앗'이었다. 결국 정직한 소녀가 이긴 것이다.

학생들은 윤 교사가 낭독하는 동화를 들은 뒤 대통령이 갖춰야 할 품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어떤 가치관을 가진 대통령을 뽑을 것인지'를 놓고 직접 투표도 해봤다. 여느 저학년 수업과 달리 흐트러진 학생 한 명 없이 집중된 분위기였다. 대통령의 조건으로 '정직'을 꼽은 학생이 있는가 하면, '용기'가 중요하다고 답한 학생도 나왔다. '지혜'를 선택한 고가연(1년)양은 "나라를 이끌어가면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지혜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지난 수업 때 '화가와 모래 생쥐'를 읽고 지혜로운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기억났다"고 설명했다. 김민근(1년)군은 "친구들과 동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좋은 교훈을 많이 얻는다"며 "동생을 놀리느라 거짓말한 적이 있는데, 오늘 수업을 들으며 앞으로 장난으로라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신영 기자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 기르는 인성교육은?]

◇'나와 사회' 관계 깨닫는데 도움

철학 동화를 통해 인성 수업을 진행하며 성과를 거둔 학교는 또 있다. 서울 천일초는 지난 학기에 6학년생 100여 명을 대상으로 '작은 철학자' 시리즈를 읽고 각종 체험활동을 하는 인성·진로 수업을 8주간 운영했다. '효'를 배우는 3회차 수업에선 시리즈 중 '집안일 대소동'을 읽은 뒤 '미래의 부모 종이 인형'을 만들어보고, '소통'을 소재로 한 5회차 수업에선 '잘 들어요'를 읽고 '선플 달기'를 해보며, '배려'를 익히는 8회차 수업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읽고 작가와 질의응답을 해보는 식이었다.

윤 교사는 "'나'의 소중함을 아는 데서 더 나아가 나의 가치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는 것이 인성 교육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수업이 발표 위주로 진행되지만 정답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부담 없이 의견을 발표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성을 키우고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 학생은 첫 수업부터 계속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마지막 수업 날 스스로 손을 들어 발표하면서 친구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작은 철학자'의 저자 김진락 조선소리봄 인성교육연구소장은 "강의하듯 인성 교육을 주입하려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동화 읽기 등 다양한 문화예술적 활동을 함께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