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23일 방송사 재승인 심사 점수에 반영하는 감점(減點)을 많게는 두 배로 늘리는 방송평가규칙 개정안을 상정한다. 감점이란 방송통신심의위가 지상파·종편·보도 채널 프로그램을 심의해 내리는 제재 수위에 따라 방송통신위가 매기는 일종의 벌점(罰點)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3년마다 하는 방송사 재승인 때 감점 때문에 탈락할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진다.

방송통신위는 대통령 직속 행정기구다. 감점이 확대되면 관(官)이 방송사 존폐를 손에 쥐고 흔들 여지가 그만큼 더 커진다. 방송사들은 알아서 정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방송통신위가 벌점을 두 배로 늘리려는 심의 항목이 공정성·객관성·선거방송이다. 시각에 따라 정치적 해석이 다를 수 있는 예민하고 모호한 사안을 자기들이 판단하고 단죄하겠다는 것이다. 방송의 건전한 정책 비판을 공정성과 객관성에 어긋난다고 옭아매면 그걸로 그만이다. 개정안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나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공정성'과 '공공성(公共性)'이라는 잣대를 주로 지상파 방송에 적용한다. 국민의 재산인 전파를 빌려 쓰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을 따로 두는 것도 방송의 산업화·민영화 추세 속에서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뜻이다. 우리 방송통신위처럼 공정성과 객관성을 공영·지상파·케이블 방송 가리지 않고 일률적 규제 수단으로 쓰는 사례는 거의 없다. 방송통신위는 지난주 산하기구 방송평가위원회를 통해 개정안을 발의하려 했다가 평가위원 대다수가 반대해 결국 직접 나섰다. 그 과정만 봐도 벌점 확대가 방송 관치(官治)를 통한 언론 통제로 이어질 위험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어떤 조치와 입법도 삼가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고 책임을 묻는 길은 언론중재위원회와 민·형사 소송으로 얼마든 열려 있다. 방송통신위는 자율 경쟁의 시대를 거슬러 거꾸로 가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정권 입맛에 따라 방송사 명줄을 겨누는 칼날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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