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박근혜 대통령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중 관계에 대해 상반되는 두 가지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먼저 "가끔은 박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만나면 미국에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을 미국은 원한다"고 했다. 9월 초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이후 미국 조야(朝野)에 퍼진 '한국의 중국 경사론(傾斜論)'에 제동을 거는 것으로 비쳤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박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요청하는 것은 우리는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준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라며 "만약 중국이 그런 면에서 실패한다면 미국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한·미가)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중국 문제에 대해 한국도 미국과 보조를 맞춰 할 말을 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한 셈이다. 한·중 관계 발전이 한·미 동맹에 저해 요인이 아니라는 것은 외교적인 언사(言辭)에 불과하고 안보 문제만큼은 미국 쪽에 서 달라고 대놓고 강조한 것이다.

지금 미국은 중국이 국제규범과 법을 무시하는 대표적 사례로 남(南)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들고 있다. 중국은 난사(南沙·스프래틀리)·시사(西沙·파라셀) 군도 등에서 인공 활주로와 인공섬을 조성, 베트남·필리핀 등과 심각한 갈등을 겪어왔다. 이곳은 세계 해양 물류의 절반 가까이가 통과하는 해로(海路)다. 미국은 이런 중국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하며 이 지역에 군사적 개입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명시한 새 안보법제를 통과시킨 후 자위대를 파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도 꼽힌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6월 "한국도 남중국해 문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간 "중국·아세안 국가 간 남중국해 행동 규칙이 체결돼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길 바란다"는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우리가 만일 이 문제에서 미국의 요구를 반영한 목소리를 낸다면 대중(對中) 관계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 무엇보다 미·중이 실제로 남중국해 문제로 정면 충돌하게 되면 우리는 곤혹스러운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불길이 동(東)중국해에서 중·일 간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이나 미·중 간 방공식별구역 갈등으로 번질 위험성도 있다. 한국이 미·중·일 간 세력 대결의 태풍권에 곧장 휘말려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또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국제 제재에도 중국이 미온적으로 대처해 온 점을 지적하며 주한미군에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미국과 대립해 온 사안이다. 우리가 당장 결정하진 않더라도 머지않아 선택의 순간이 올 수 있다.

청와대는 이번 박 대통령의 방미가 "'대중(對中) 경사론'을 불식하고 우리 입지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자랑했지만, 단순히 '한·중 밀착' 우려를 씻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미·중 간 갈등이 실제로 벌어졌을 때 우리가 어떤 논리를 갖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밑바닥부터 다시 검토하고 국가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또렷이 일깨워주었다.

우리는 핵·통일 문제에서도 미·중 모두와 협력해야 하는 처지다. 북·중을 불신하는 미국과 북을 끌어안고 가려는 중국 사이에서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지는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큰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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