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시는 이파리가 깻잎처럼 생긴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의 껍질을 벗긴 뒤 여인네들이 이와 혀로 한 올 한 올 실을 뜯어내 옷감을 만들었다. 방에 모여 앉아 입술로 실을 뱉어 낸 여인네들의 혀에는 굳은살이 배겼다.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이 풍경과 모시 제작 과정이 '모시한산―언저리의 미학'이라는 책 한 권으로 만들어져 나왔다.

지금은 충남 서천군 한산에 가도 모시풀을 거둬다 희고 가는 실을 토해 내는 여인네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책 속의 사진과 이야기는 문화 코디네이터 최지은씨와 김영길 상지영서대 교수가 18년 전 일본 잡지 '긴카(銀花)'를 위해 취재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최씨는 한식(韓食) 전문가인 무형문화재 황혜성 선생의 제자로 1980년대부터 우리 공예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일본인 독자를 위해 취재한 내용이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 전통문화를 담은 훌륭한 기록물이 된 것. 거의 20년 만에 한국에서 책으로 빛을 봤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수류산방 사무실에서 박상일 방장과 심세중 실장, 김영길 교수가 모시한산 책 표지를 펼쳐 놓고서 웃고 있다(왼쪽부터). 아래 사진은 모시풀을 잘라 물에 담가 불린 후 손에 쥐고서 이를 이용해 실을 뽑아내는 ‘모시째기’ 장면.

사진을 찍은 김 교수는 "지금은 모시장도 서지 않고, 실 뽑는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사라져가고 있는 모습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보관하고 있던 필름 150통을 뒤져 사진을 골랐다"고 했다.

출판사 '수류산방(樹流山房)'이 책을 만든 과정도 모시천을 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책 한 권을 기획해서 만들어 내는 데 3년의 세월이 걸렸다. 책 만드는 장인(匠人)들이 만든 한산모시 장인들의 기록인 셈이다. 책 표지는 벗겨 펼치면 커다란 포스터가 됐고, 이른바 '누드 제본'을 해서 책등에는 실로 묶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디자이너 김인자가 모아온 자투리 모시천 사진을 실은 페이지는 뒤가 비치는 얇은 종이를 사용해 모시의 질감(質感)을 표현했다. 모시천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원래 옷 짓는 사람들은 자투리 하나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자투리를 모았다가 보자기를 만들었다. 한데 최근에는 모시 보자기 붐이 일면서 멀쩡한 모시를 이리저리 잘라 조각보 문양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책은 이런 세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모시의 아름다움을 담은 일종의 디자인 서적이지만, 모시풀의 겉껍질을 훑고 속껍질을 바래고 실을 잇고 짜는 15단계의 공정도 세세하게 표로 만들어 실었다. 그렇게나마 기억(記憶)을 붙잡아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류산방 대표인 박상일 방장은 "지금 옷을 그렇게 만들어 입는다면 어김없는 시간 낭비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대답은 마치 자신들이 책을 만드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 같다.

책의 부제를 '언저리의 미학'으로 정한 것에 대해 그는 "풍선의 가장자리나 책상 네 모서리의 다리처럼 중심에 있지 않지만 언저리가 중심을 지탱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책을 읽는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지만, 마음을 다해 책을 만드는 것이나 정성스럽게 모시천을 만드는 과정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