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연합팀 선수들이 경기 전후 골프장 내에서 머무는 텐트 앞에서 최경주(45·사진 위)와 이야기하는데 전기밥솥을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밥까지 지어 먹었느냐?"고 묻자 "한국·일본·태국·인도 선수가 나왔는데 밥솥 준비하는 건 당연하지 않으냐"며 씩 웃었다. "꼭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는 밥심이 있어야 공이 잘 맞는다"는 특유의 너스레가 이어졌다. 아쉽게 1점 차로 대회를 끝낸 세계연합팀 선수들은 탁구를 치거나 노래를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11일 인천 송도의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막 내린 2015 프레지던츠컵(유럽을 제외한 세계연합팀과 미국팀의 골프 대항전)은 역대 최고의 명승부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됐다. 세계연합팀은 2003년 무승부 이후 다섯 차례 대회에서 늘 3~4점 차 이상 완패를 당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배상문이 출전한 마지막 날 마지막 조에서 승부가 갈렸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 세계연합팀 수석 부단장을 맡아 지난 1주일간 선수들과 동고동락했던 최경주는 "양팀 선수들 모두에게 최고로 준비가 잘된 대회였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첫날 포섬(두 선수가 한 개의 공을 번갈아 치는 방식) 경기에서 1대4로 참패한 뒤 세계연합팀은 난리가 났다. 전날 연습 경기에서 닉 프라이스 단장은 포섬에 나설 선수들을 테스트하는 차원에서 6000달러(약 690만원)를 건 내기를 붙였다. "아니, 팀 내기에 6000달러나 걸었냐"고 묻자 최경주는 "주는 걸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단장이 약속한 것은 맞다"고 했다. 이 내기에서 배상문과 찰 슈워젤 조가 1등을 했는데, 갑자기 슈워젤이 몸이 안 좋다고 해 배상문까지 나가지 못했다. 한국 선수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골프장에서 한국 팬들은 스타 선수가 많은 미국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미국이 홈팀이나 마찬가지였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카트를 타고 선수들을 독려하던 최경주가 보기에 그중에서도 제일 힘을 못 쓰는 선수가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키였다. "둘의 분위기가 서먹했다. 포섬은 호흡이 생명인데 애덤 스콧하고 말이 잘 안 통할 테니."

미켈슨 그린에선 신사, 휴게실에선 아저씨 필드에서 세계 최고의 샷을 뽐내던 미국팀 선수들도 휴게실에 오면 평범한 아저씨처럼 망중한을 즐겼다. 미국팀 최연장자 필 미켈슨(가운데)이 양말만 신은 채 두 다리를 탁자에 올려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최경주는 마쓰야마에게 "누구하고 같이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마쓰야마는 "11명 다 괜찮다"고 했다. "내가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하자 그제야 "배(상문)와 함께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본 투어 경험이 있는 배상문은 일본어를 곧잘 했다. 맘에 맞는 짝을 만난 마쓰야마는 3일째 포섬과 포볼 경기에서 1승1무를 거둔 데 이어 마지막 날 싱글 매치 플레이에서도 승점 1점을 보태는 등 펄펄 날았다. 최경주는 "마쓰야마를 위해서 준비한 스시와 알밥을 나도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배상문은 이번 대회 최대의 이슈 메이커였다. 최경주는 "한 번도 병역 문제가 코스 내에서는 화제가 되지 않도록 해준 팬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걱정이 많은 배상문에게 "나는 서른한 살이 돼서야 미국 PGA 투어에 갔다. 너는 이미 2승을 거뒀고 마스터스에도 나가 봤고 프레지던츠컵에도 오지 않았느냐. 너무 걱정하지 말고 군에 다녀오라"고 했다.

최경주는 대회를 앞두고 세계연합팀 선수들에게 "샷할 때도 카메라 소리 들릴 거다. 신경 쓰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여는 최경주인비테이셔널을 통해 '휴대폰 없는 대회' '담배 연기 없는 대회' 캠페인을 해야 할 정도로 한국 갤러리 문화에 자신이 없던 그였다. 하지만 이번엔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열리는 대회 못지않게 질서 있는 한국 팬들이 코스를 가득 메운 채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최경주는 "처음으로 프레지던츠컵에 나갔던 2003년 남아공 대회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 순간 울컥했는데, 그때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최경주의 아내 김현정(44)씨도 양팀 선수들의 아내와 여자 친구들을 위한 관광 안내를 하고 광주 요에서 준비한 접시를 편지와 함께 선물했다.

최경주는 12일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2016년 올림픽과 2017년 프레지던츠컵에 선수로 나가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하겠다"며 "이번 대회 미국 부단장으로 온 데이비스 러브 3세가 올해 쉰하나의 나이에 PGA 투어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많은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