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렉시예비치(왼쪽)와 그녀의 대표작 ‘체르노빌의 목소리’.

체르노빌 원전(原電) 사고의 비극을 폭로한 벨라루스 저널리스트 겸 논픽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8일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그녀의 글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보여주는 기념비"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림원 사무총장 사라 다니우스는 "지난 30~40년 동안 알렉시예비치는 구(舊)소련 시절과 소련 해체 이후의 개인을 문학의 지도에 기록해왔다"면서 "그의 작업은 새로운 문학 장르의 탄생"이라고 격찬했다. 알렉시예비치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림질을 하다가 수상 소식을 들었다"며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시아 작가) 파스테르나크 등 위대한 이들이 떠오른다. 환상적인 일이지만 살짝 불안하기도 하다"고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2차 세계대전, 사회주의 몰락, 체르노빌 원전사고 등을 경험한 수천 명의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옮겼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대부분 소설가이거나 시인, 극작가다. 작가가 아닌 수상자로는 역사학자 몸젠(1902), 루돌프 오이겐(1908),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1927), 버트런드 러셀(1950),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 등이 있다.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14명으로 늘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우크라이나에서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녀는 1967년 벨라루스 국립대 언론학과를 나와 지역 신문 기자와 교사를 지내다가 문예지 기자가 된 뒤 논픽션 작가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1983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구소련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여성 200여명을 취재한 책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탈고했으나, 국가 검열에 걸려 출간하지 못했다. 그 여성들을 전쟁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고, 그녀들의 비극과 참상에만 집중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은 고르바초프 시대가 열린 뒤 1985년 정식 출간됐고, 유명 언론인이 된 알렉시예비치는 논픽션 집필에 전념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지만 자신의 글쓰기를 '목소리 소설'이라고 불렀다.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모은 논픽션이지만 소설처럼 생생하게 읽히는 다큐멘터리 산문이기 때문이다.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을 취재해 20년 만에 완성한 책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1997년에 펴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