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남아프리카에서 찍힌 간디의 모습. 간디는 1893년부터 22년간 남아프리카에 머물며, 인종차별을 겪는 인도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싸웠다.

마하트마 간디는 스물네 살이던 1893년 남아프리카로 건너갔다.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변호사 자격증을 갓 땄을 때였다. 인도계 회사의 소송 사건을 변호하기 위해 1년 계약으로 고국을 떠난 간디는 22년간 남아프리카에 머물며 이곳으로 이주한 동포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싸웠다. 당시 백인 정부가 지배하던 남아프리카에는 인도인 약 7만명이 노예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간디가 직접 겪은 인종차별과 모욕이 계기였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도시 프리토리아로 여행할 때 '인도인은 일등석에 앉을 수 없다'며 기차에서 쫓겨나는 모욕을 당했다. 마차를 타고 가던 중 백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고 마부에게 두들겨맞고, 백인 전용인 호텔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다.

간디는 1894년 인종차별 반대 투쟁단체인 '나탈 인도국민회의'를 창설하고, 차별의 실상을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다. 간디의 철학인 '사티아그라하(비폭력평화저항운동)'는 이때 남아프리카에서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남아프리카의 나탈주(州) 의회가 인도인의 선거권 박탈을 입법화하려 하자, 간디는 법안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간디 사상에 동조하며 평화적 시위에 나선 수많은 인도인이 정부의 투옥과 처벌을 감수했다. 간디도 1907년 법안 반대운동의 주동자로 지목돼 투옥됐다. 그는 이후에도 투쟁을 계속하다 1915년 귀국해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