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일가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육'이 도마에 올랐다. 사(私)교육비, 복잡한 대입 전형, 불만족스러운 학교 수업이 단골 메뉴다. 당장 3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수능을 앞둔 수험생 가정에서는 어떠했을까. "(올해 수능에서는) 절대 실수하지 말자!"고 온 가족이 수퍼문을 바라보며 기원했다고 한 지인은 전한다.
11월 12일 실시되는 2016학년도 수능은 정부가 수차례 강조한 대로라면 '쉬운 수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험생 대상 모의 수능에서 "쉽게 내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예를 들어 9월에 실시한 모의 수능에서 자연계 학생들은 1등급(상위 4%)을 받기 위해서는 국어·영어·수학 모두 100점을 받아야 했다. 지금까지의 모의 수능과 본수능 모두 합쳐 가장 쉽게 출제된 경우다. 서울 강남의 한 재수 학원에서는 모의 수능 전 과목(국·영·수·탐구 2과목) 만점자가 45명이나 나왔다고 한다.
대입 시험문제를 쉽게 내자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다. 어려우면 학습 포기자가 속출하고 사교육 의존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영어 수능 절대평가 ▲쉬운 교육과정 개편 ▲중간·기말고사 없는 중학교 '자유학기제' 도입 등을 잇따라 발표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 정책 방향이 우리 교육에 필요한 측면이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우리 청소년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여긴다. 입시가 '소년 철인(鐵人)경기장'으로 변한 교육 현장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있었다.
하지만 문제를 쉽게 낸다고 누적된 교육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순진하고 단순하다. 고교 졸업생 70%가 대학에 가는 사회다. 모든 학생이 명문대를 향해 달려가는 무한 경쟁의 원인이 무엇인지 살피고 그 구조부터 손대야 한다. 수능이 쉬워도 어차피 들어가고 싶은 대학의 정원은 제한돼 있고, 그 관문을 통과하려면 '실수 안 하기' 경쟁을 해야 한다.
이 와중에 의도하지 않았던 현상도 나타났다. 사회와 과학탐구, 제2외국어가 대입 당락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 과목의 중요도가 덜하다는 게 아니다. 사회와 과학탐구 등 탐구 과목은 10여 개에 이르는 과목 중 수험생이 선택해 치른다. 그런데 수험생이 어떤 탐구 과목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또 수능 당일 그 과목이 얼마나 어렵게 출제됐느냐에 따라 점수(표준점수)가 달라진다. "운(運)에 따라 성적이 바뀔 수 있다"고 수험생들이 말한다.
올해 수능 원서를 낸 수험생 중 재수생 비율은 22.5%에 이른다. 반수생이 7만5000명이고 이로 인한 등록금 낭비가 500억원이라고 한다. 일부 학생은 "수능 당일 재수(財數) 없어 재수(再修)한다"고 한다. '실수하면 끝'인 쉬운 수능이 이런 세태를 낳았다. 재수 비용은 연간 1000만~2000만원으로 경제적 여력이 없는 가정에는 부담되는 돈이다. 특목고와 자사고, 서울 강남 지역 고교의 재수생 비율이 높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쉬운 수능으로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생들에게 꿈을 가져다주고 있다고 정부는 생각할 것이다. 이 정책이 의도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교육 현장을 세밀하게 다시 살펴봐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