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는 2일 내년 총선 선거구 수를 발표하려고 했지만, 최종 안(案) 마련에 실패했다. 여야(與野)가 농어촌 지역구 감소 문제를 이유로 각각 "발표를 미뤄달라" "숙고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런 영향 등으로 막판 선거구 조정 과정에서 획정위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획정위에 기준을 정해서 줬어야 할 여야는 획정위가 구성된 지난 7월 13일 이후 약 3개월 동안 자기들 주장만 하고 협상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시한에 쫓긴 획정위가 불가피하게 이날 독자적으로 결과를 발표하려 하자 이마저도 막은 셈이 됐다.

획정위는 이날 오후 2시 전체회의를 열고 현행 지역 선거구 수(246곳)를 244~249곳 중 한 가지로 정하기 위해 7시간 넘게 논의를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여야 정치권이 동시에 제기한 농어촌 선거구 감소 문제 때문이었다. 획정위는 이날 밤 보도자료를 내고 "244~249곳에 따른 시뮬레이션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논의했다"며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인구 기준을 준수하는 동시에 농어촌 지역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작년 10월 헌재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구별 인구 편차 비율이 2대1을 넘어서지 않도록 하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를 경우 도시 지역은 지역구가 늘고 농어촌은 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지역구가 없어질 위기에 놓인 농어촌 지역 여야 의원들은 "획정위의 선거구 수 결정을 잠정 연기하라"고 강하게 요구해왔다.

지금까지 새누리당은 농어촌 선거구 확보를 위해 지역구 의석 수 증가를 요구하며 비례대표를 축소해야 한다고 해왔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비례대표는 줄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날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획정위에 "오는 8일로 발표를 연기해달라"고 요청했고,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연기라는 표현을 뺀 채 "농어촌 대표성을 감안해 결정을 숙고해달라"는 의견만 전달했다. 새정치연합은 "지역구를 늘리면 결과적으로 비례대표가 줄어들게 된다"는 당내 목소리 때문에 "숙고해 달라"는 수준으로 톤을 다소 낮췄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가 최종 결정을 획정위로 넘기면서 '농어촌 지역 감소는 안 된다'는 압박 때문에 부담이 커진 것도 획정위가 발표를 미룬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획정위가 유력하게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진 선거구 246곳(현재와 동일)으로 최종 안이 결정 나면, 헌재가 정한 인구 비율을 맞추는 과정에서 수도권 등 도시 지역 선거구는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도시 지역 선거구가 늘어나면, 농어촌 지역이 포함된 선거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경북(15곳)은 2~3곳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전북(11곳)도 1~2곳이 줄어들어야 한다. 광주(光州·8곳), 강원(9곳), 경남(16곳)은 1곳씩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충북(8곳)은 유지되거나 1곳이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지역인 울산, 제주, 세종은 인구 기준에 맞아 이번 선거구 조정 대상에서 빠졌다.

여야는 또 획정위가 선거구 수를 발표하더라도 이 문제와 관련한 논의를 다시 이어가기로 했다. '선관위 결정에 따르겠다'던 약속도 저버린 것이다.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획정위 안이 발표돼도 농촌 지역 대표성 문제를 여야 지도부가 서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획정위가 국회에 구체적인 획정안을 제출하도록 돼 있는 법정 시한인 오는 13일을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획정위는 이날 발표를 미루면서 다음 회의 날짜도 정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