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제공

명절을 맞아 고향 부산을 다녀왔다. 기차에서 내려 대합실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광경은 어묵 판매점 앞에 늘어선 긴 행렬. 생긴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이 판매점은 어느새 부산역 대합실의 풍경과 냄새를 바꿔 놨다. 바로 옆에서 영업을 시작했던 일본 브랜드의 도넛 전문점은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어묵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내친김에 부평동 깡통시장으로 갔다. 대목을 앞둔 시장 풍경이야 어디 할 것 없이 분주하지만 어묵 판매점이 몰려 있는 3구역은 특히 소란스러웠다. 전국으로 택배 보낼 상자들과 어묵을 사러 온 고객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상전벽해. 지난 몇 년 동안 부산어묵 업계의 변화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다. 2011년 초 나는 부산어묵 취재를 위해 제조 공장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당했다. 외부인만 다녀가면 위생 문제가 대두되니 누구라도 반가울 턱이 없었다. 어묵 몇 개 싸주며 그냥 돌아가라는 소릴 듣기 일쑤였다.

부산이 어묵으로 유명해진 배경에는 자갈치시장이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자갈치시장에는 연근해에서 잡힌 생선이 연중 풍부했다. 기술자들은 자전거나 리어카로 생선을 날라 어묵을 만들었다. 원재료의 선도는 곧 어묵의 품질과 직결된다. 1940~50년대에 생긴 어묵공장 대부분이 자갈치시장에서 도보로 30분 이내 거리에 있었던 이유다.

신선하고 값싼 생선이 풍부하니 생선살의 함량도 달랐다. 아무리 생선이 귀한 때라도 65%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이는 기술자들의 고집 때문이었고 그 고집이 결국 부산어묵의 맛을 유지하는 비결이 되었다.

1980년대까지 어묵은 전 국민이 애용하는 반찬이자 길거리 음식의 대표 주자였다. 부산의 어묵업계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대형 식품기업들이 어묵시장에 본격 진출한 1990년대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자본력을 앞세운 기업들은 수도권에 공장을 짓고 부산의 기술자들을 하나 둘 영입했다. '부산어묵'이라는 상표가 배타적 권리를 갖지 못한 까닭에 누가 어디서 만들건 '부산어묵'이라는 상표를 붙일 수 있었다. 부산의 어묵업계는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거나 문을 닫아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우선 위생 문제. 2008년부터 시작된 부산 지역 어묵 제조 업체의 시설 개선 사업은 2012년에 이르러 마무리되었다. 다음으로 소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베이커리형 매장을 도입해 값싼 길거리 음식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조리해서 먹어야 하는 기존의 형태로는 소비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어묵 크로켓(고로케)을 시작으로 간식이나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덕분에 불과 10여 종에 불과했던 부산어묵의 가짓수가 지금은 무려 80여 종에 이른다.

부산어묵은 이제 제2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가 '부산'이라는 지명에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브랜드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련의 변화를 주도하며 변화를 선도하는 '삼진어묵', 전통의 강자 '환공어묵'과 '범표어묵',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고래사'와 '미도어묵', 초량어묵의 원조인 '영진어묵' 등이 대표적이다.

본격적인 어묵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부산에서 생겨나 부산에서 성장한 부산어묵이 올겨울이 지나면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