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각) 저녁, 세계 경제의 ‘양강’(兩强)인 미국과 중국의 두 정상은 워싱턴DC에서 기후변화와 해킹, 남중국해 분쟁 등에 관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비슷한 시간, 뉴욕의 최고급 호텔인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 도착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시가총액 합계가 5300조원에 달하는 미국 굴지의 기업 47곳의 최고경영자(CEO)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이어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5월 중국 시안의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2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도착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모디 총리와 마찬가지로 기업인들과의 만찬으로 국빈방문 일정을 시작했었다.

당시 시 주석과의 만찬 자리에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지니 로메티 IBM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CEO, 사티아 나델리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재계의 거물들이 참석했다.

방미에 앞서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 제품 구매를 선물로 건냈다는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경제력 차이(지난해 기준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808달러로 8154달러인 중국과 격차가 컸다)를 반영이라도 하듯, 선물의 가치 면에서 인도는 중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중국은 380억달러(약 45조3000억원) 상당의 보잉사 항공기 300대를 구입하기로 한 반면 인도가 구매하기로 한 아파치 헬리콥터 22대와 치누크 헬리콥터 15대의 가격은 25억달러(약 3조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지에서 전해지는 두 정상의 미국 기업인 만찬 분위기를 비교해 보면 선물보따리의 크기가 분위기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시애틀에서 불러 모은 CEO들은 IT(정보통신) 업종에 집중됐지만, 모디 총리의 만찬에 참석한 CEO는 마이클 오닐(씨티그룹), 메릴린 휴슨(록히드마틴), 지니 로메티(IBM), 마크 필즈(포드), 인드라 누이(펩시) 다양한 분야의 거물이 수두룩했다.

만찬에 참석한 47개 회사의 기업 가치를 합치면 4조5000억달러(약 5373조원)에 달한다. 올해 우리나라 GDP(국내총생산) 전망치의 3.1배에 달하며, 미국 연방정부의 연간 예산(약 4조달러)보다 많은 금액이다.

행사에 참석한 기업인과 현지 언론은 두 정상의 소통 방식이 차이를 가른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고 증언한다. 모디 총리가 특유의 친화력과 언변을 무기로 기업인들과 친밀하게 소통하며 투자를 부탁한 반면, 시 주석은 중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모디의 만찬에 참석했던 미국의 사모펀드 블랙스톤그룹의 스테판 슈워츠먼 CEO는 인도 NDTV와의 인터뷰에서 “모디 총리가 우리의 제안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은 만찬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인도 모디 총리와 함께한 시간은 특별했다”며 “정책으로나 자질 면에서 인도 독립 이후 최고의 지도자”라고 추켜세웠다.

반면 시 주석의 만찬에 참석한 미국 기업인들은 “이메일 전달보다 나을 것이 없는” 주석의 일방적인 ‘전달식’ 소통 방식에 불만을 표했다고 인도 영문일간지 타임스오브인디아(TOI)는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24일 “경제 개혁에 있어 시 주석의 성과는 기대 이하”라며 “시간이 갈수록 외국 기업들에 대한 경계의 수위를 높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

물론 인도와 중국 두 나라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통 방식만 가지고 단순 비교해 판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시 주석의 미국방문을 앞두고 미국이 중국의 사이버 해킹 문제를 비난하고 나섰고, 여기에 더해 환율과 증시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개입을 놓고 중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경제여건)에 대한 의문이 확산되면서 시 주석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결국 시 주석은 기업 만찬은 물론 정상회담에서도 ‘해킹 무관’ 주장에 주력하며 의제를 선점하지 못하고 미국에 끌려다니는 인상을 줬다.

일각에서는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최근의 증시 불안 등으로 중국시장에 대한 매력이 감소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로비단체인 정보통신산업위원회(ITIC)의 딘 가필드 의장은 최근 중국 경제사절단과의 만남 직후 미국의 공영 라디오방송 NPR과 갖은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의 광범위한 협력은 (최선이 아닌) 차선(suboptimal)”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13억 인구와 빠른 속도로 수가 늘고 있는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 중국 시장을 가볍게 여길 정부나 기업은 없다.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공화당의 주요 대선후보들이 중국과 시 주석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같은 당 소속의 주지사들은 중국과의 협력 강화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모디 총리는 미국 방문 마지막 날인 28일 오전 11시 뉴욕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에 앞서 26일에는 실리콘밸리가 있는 서부 해안지역으로 이동해 구글 캠퍼스와 전기자동차 업체인 테슬라의 주요 시설을 둘러보고 팀 쿡 애플 CEO을 비롯한 IT업체 CEO들과 면담을 갖게 된다. 27일에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와 함께 페이스북 사용자들과 대화하는 타운홀 미팅에 참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