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창설 이래 지난 70년간의 경험에 비춰 우리는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진실되고 공평하게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모든 시대에 걸쳐서 개혁과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24일(현지 시각) 뉴욕 유엔총회 연단에 올라 연설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때론 절절한 애원으로, 때론 날카로운 질타로 인류의 평화와 정의 실현을 호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이 25일 유엔 총회 연설을 위해 뉴욕 유엔본부에 도착해 반기문 사무총장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는 반기문 총장 및 직원들과 환담한 뒤 회의장으로 이동해 역대 교황으로서는 다섯번째로 유엔 총회 연단에 올랐다.

교황의 유엔총회 연설은 1965년 바오로 6세 이후 다섯 번째, 2008년 베네딕토 16세 이후로는 7년 만에 있는 일이지만 각국 정상(頂上)들의 총회 연설이 시작되는 날 첫 번째로 교황이 연설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력과 부(富)의 불균형 문제를 지적하기는 했지만 전날 워싱턴DC 의회 연설과는 달리 현실 정치적 문제보다는 인권과 평화, 분쟁의 해결, 종교적·정신적 자유와 집·일자리·음식·교육 등 삶의 문제에 집중했다. 분쟁의 해결과 인신 납치, 마약 밀매, 성적(性的) 착취 등의 문제 해결에도 유엔과 회원국이 계획이 아닌 실천으로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아침 9시쯤 유엔 본부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반기문 사무총장과 환담을 나눈 뒤 각국 대표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총회장에 입장했다. 70년간 세계 평화를 위해 애써온 유엔과 직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시작된 연설은 곧 지구촌의 어두운 부분에 집중됐다. 그는 "지금 필요한 것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정치·경제 그리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을 균등하게 갖도록 하는 것"이라며 "세계 각국의 이익을 적절히 규제할 수 있는 사법 체계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념이나 문화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국제 사법 질서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그러면서 세계적인 금융 기관들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세계적인 금융 조직들은 지속적인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신경을 써야 하고, 조직의 힘을 이용해 사람들을 억압해 더 심각한 빈곤을 일으키고 소외시켜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국가 권력자들의 의무도 강조했다. "각국 지도자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인류가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며 "각국 지도자들이 국민들에게 지원해야 하는 것은 머물 수 있는 집과 토지, 일자리 등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종교적인 자유와 교육을 받을 권리, 시민으로서 누릴 권리까지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과 내전으로 우리의 형제 자매와 소년 소녀들이 울고 괴로워하고 죽어가고 있다"며 분쟁 해결에 전 세계가 힘을 합칠 것을 호소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남수단, 동아프리카 대호수 지역 등 현재 내전이 발생하고 있는 곳을 일일이 거명하면서 "이들 지역의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를 찾아오는 것은 인류의 양심에 관한 의무"라고 말했다.

그는 연설 말미에 고국 아르헨티나의 문호 호세 에르난데스의 산문시 '마르틴 피에로'의 구절을 인용하며 전 세계 인류의 연대를 강력히 호소했다. "형제들은 서로 연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1법칙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끼리 다툴 경우 우리는 외부의 적에 의해 잡아먹히게 됩니다."

교황은 유엔 일정을 마친 뒤 이어 9·11 테러 희생자 추모 박물관을 방문해 유족들을 만난 뒤 맨해튼 매디슨 스퀘어가든과 센트럴파크에서 수많은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했다. 26일엔 필라델피아 성 베드로와 바오로 대성당 미사를 집전하며, 27일엔 150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 천주교가족대회 거리행진에 참석한 뒤 바티칸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