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도쿄 고급 백화점 마쓰야긴자(松屋銀座)가 15년 만에 신사복 매장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 "드디어 신사복도 돈이 돌 것 같다"는 백화점 담당자 말을 아사히 신문이 큼직하게 보도했다. 왜 그랬을까. 불황이 올 때 제일 먼저 줄이는 항목도 아빠 옷, 불황이 갈 때 마지막으로 돈 쓰는 항목도 아빠 옷이다. 아베노믹스가 본궤도에 올랐다는 신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재집권 직후 '세 개의 화살'을 한꺼번에 쏘겠다고 했다. 금융완화·재정완화·구조개혁을 동시에 실시하겠다는 얘기였다. 그에 따라 올 들어 도요타 등 주요 대기업이 역대 최고 수출 실적을 올렸다. 도쿄 오피스 공실률이 리먼 쇼크 이후 최저점을 찍었다. 중국 방문객이 중국은행 신용카드로 작년 한 해 2800억엔, 올 상반기 3600억엔을 일본에서 긁고 갔다.
[아베 총리의 새로운 경제정책을 일컫는 신조어 아베노믹스란?]
전문가들은 "돈만 풀어서 된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아베 총리가 물꼬를 트고, 일본 기업이 '혁신'으로 맞장구쳤다. 한때 일본 기업은 '갈라파고스'라 불렸다. 내수에 만족하고 관행을 고집했다. 이젠 달라졌다. 장기 불황 20년은 절치부심의 20년이기도 했다. 업종의 벽, 관행의 벽을 무너뜨린 스타 CEO들이 내수 산업, 사양 산업, 3D 산업에서 새 활로를 뚫고 있다.
◇단 한 번도 지지 마라
일본 변기·비데 회사 LIXIL은 4년 전 GE 부사장 후지모리 요시아키(藤森義明·64)를 대표로 영입했다. 그는 도쿄대 졸업 후 미국 기업에서 잔뼈가 굵었다. LIXIL에 온 뒤 "GE에선 5전 4승 1패 하는 사람은 의자가 없어진다"고 했다. 5전5승 하란 독려였다.
LIXIL은 일본에서 부동의 1위지만, 매출 90%를 내수에 의존했다.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에서 이러면 미래가 없다. 그는 아메리칸스탠더즈 등 해외 주택 설비업체를 인수했다. 서구 시장에 비집고 들어갈 통로를 만들고,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스마트 비데를 미국 시장에 소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변기계의 스티브 잡스'라고 썼다. 인사도 확 바꿨다. 지난 4월 사업 부문을 조정하면서 사업부문장 4명을 전부 외부에서 데려왔다. LIXIL의 해외 매출이 최근 3년간 539억엔에서 4000억엔으로 7배 이상 늘었다.
◇반값에 팔아라
불황으로 건설 업계가 죽 쑬 때, 주택 전문 타마홈은 한 채 1700만엔짜리 '저가(低價) 주문주택'으로 작년 한 해만 1495억엔을 벌었다. 하지만 창업자 다마키 야스히로(玉木康裕·65) 대표도 40대까지는 남들처럼 사업했다. 그는 후쿠오카(福岡)현 중소 건설회사 사장의 차남이었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 회사에 들어갔는데, 나이 마흔에 부동산 버블이 깨졌다. '종래의 방식'이 돌연 먹히지 않는 세상이 왔다.
그는 중저가 의류 체인 '유니클로'를 보고 "집도 반값에 팔자"고 결심했다. 아버지 회사를 나와 독립했다. 창업 자금을 꾸려고 생명보험부터 들었다. 은행 직원에게 보여주며 "실패하면 할복해서 갚겠다"고 했다.
그는 인건비·건축자재 값을 철저하게 줄였다. 목수들이 차 마시며 쉬는 시간까지 없앴다. 목수들이 "에도시대 때부터 전통"이라고 반발하자, "빨리 여러 채 지어야 당신들 수입도 늘어난다"고 설득했다. 지방 건설회사가 줄도산할 때, 타마홈은 전국에 260개 지점을 내고 2013년 도쿄 주식시장 1부에 상장했다.
◇거창할 필요 없다
해외 투자, 유통 혁신…. 그러나 모든 혁신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직원들이 몸으로 돈 버는 작은 회사는 어떨까.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올해부터 직원 800명 남짓한 신칸센 청소회사 텟세이 얘기를 교재에 넣었다.
신칸센이 도쿄역에 들어와서 나갈 때까지 12분 걸린다. 승객 승하차 시간이 5분이다. 나머지 7분 동안 22명이 한 조가 돼서 1인당 85~100석을 치우고, 창문·바닥·선반을 닦고, 승객에게 기운차게 인사한다. 프랑스 국철 대표가 "신칸센 청소를 수입하고 싶다"고 했다. CNN이 '7분의 기적'이라고 소개했다.
이 회사도 한때는 분위기가 어두웠다. 회사도 승객도 직원도 '청소는 하찮은 일'이라 여겼다. 야베 테루오(矢部輝夫·68) 전무가 그걸 바꿨다. 그는 월급을 올리는 대신 제복을 바꿨다. 놀이공원 직원처럼 화려한 색이었다. "여러분은 '청소 아줌마·아저씨'가 아니라 승객들이 감탄하는 '신칸센 극장' 주인공"이라고 했다.
◇정부는 물꼬만 터라
표나지 않게 청소할 땐 승객들이 직원들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제복이 바뀌자 승객들이 "수고하신다"고 인사했다. 직원들이 "여름엔 알로하 셔츠, 겨울엔 산타클로스 옷을 입겠다"고 자청했다. 신칸센에 여성 전용 화장실이 생긴 것도 직원들 아이디어다.
이리야마 아키에(入山章榮·42) 와세다대 교수는 "일본 기업의 고질적인 약점이 '강한 현장, 약한 경영'이었다"면서 "아베노믹스는 (불황 탈피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고, 이제부턴 기업 스스로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제일 필요한 게 '혁신을 갈망하는 경영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