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임시정부 자취를 따라 33일간 3000㎞를 달린 한·중 청년 자전거 대장정 취재를 다녀왔다. 스무 명 한·중 청년이 임정 마지막 근거지인 충칭에서 첫 거점인 상하이까지 두 바퀴로 달리며 고난의 독립운동사를 되새긴 행사였다. 지난달 24일 난징에서 합류해 2주일간 기사를 송고했다. 그런데 취재 중 뜻밖의 휴대폰 문자를 받았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독립운동이 더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자전거 대장정은 중국 내 임정의 자취를 따라간 행사인 까닭에 아무래도 김구의 역할을 조명하는 기사의 비중이 컸다. 이에 대해 한 지인이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1948년 건국이 1945년 광복보다 더 중요하다는 지론을 가진 분이다.
기자는 앞서 7월 중순 하와이 호놀룰루를 찾아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후 서거할 때까지의 삶과 독립운동 당시 이야기를 3회 시리즈 기사로 보도했다. 당시 이 지인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와이 소식을 자세히 전해주어 국민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격려했다. 그런데 이제 김구를 높이는 기사를 쓰니 서운하다는 뜻으로 느껴졌다. 반면 이번 대장정에 함께 갔던 독립운동사 연구자는 "이승만은 안전한 곳에 있지 않았나. 중국에서 목숨 걸고 독립운동한 김구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나"라고 했다.
이전에도 이승만과 김구 관련 기사에 대해 칭찬과 비판을 여러 차례 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을 어떻게 그냥 이승만이라고 쓰나?" "김구 선생이라고 써라" 같은 비난은 차라리 애교에 속한다. 이승만을 옹호하는 분들은 김구를 폄훼하고, 김구를 높이는 분들은 이승만을 짓밟으면서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하라는 듯 주문할 때는 당혹스러웠다.
최근 45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한 7권짜리 대작 '이승만과 김구'(조선뉴스프레스)를 출간한 원로 언론인 손세일씨는 "이승만과 김구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국민국가를 창건한 정치 지도자"라고 했다. 두 사람은 독립운동 내내 협력 관계였으며 반(反)공산주의 이념에 철저했다. 1948년 남북 협상 과정에서 의견을 달리했지만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건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승만과 김구를 각각 숭모하는 분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김구는 대한민국 건국과 관계없다" "이승만은 친일파" 같은 극언도 나온다. 이승만과 김구는 생전에 서로를 그렇게 여긴 적이 없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일부 세력이 이런 갈등을 파고들어 이용한다. 신복룡 건국대 석좌교수는 "김구는 좌파일 수 없는 사람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할 수 없다는 좌파가 태극기 걸어놓고 이봉창이나 윤봉길과 사진을 찍은 김구의 영정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김구는 마지막 주석이었다. 대한민국은 두 사람을 함께 기리지 못할 정도로 허약하지 않다. 두 사람을 숭모하는 분들이 이승만과 김구를 '화해'하게 할 때 건강한 통일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