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검장 출신인 최모 변호사가 선임계를 내지 않고 변론을 한 사실이 적발된 데 대해 법조계에서는 "고질적인 병폐(病弊)가 곪아 터졌다"는 분위기다. 그동안 '거물급 전관'이 보이지 않게 막후에서 활동한다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실체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는 2001년 검찰총장 출신이 선임계 없이 수임료로 1억원을 받아 문제가 된 이래 14년 만에 공식적으로 적발된 것이다.

'○○○ 변호사가 A사건의 변호인으로 선임됐다'는 내용이 담긴 선임계는 사건과 관련한 변호사의 '이름표'처럼 변호 활동의 투명성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최 변호사의 '몰래 변론'은 법조윤리협의회가 최 변호사 측이 지방변호사회에 제출한 수임 사건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포착됐다. 법조윤리협의회는 전관예우 등 법조 비리를 없애기 위해 설립된 독립기구로 현재 이홍훈 전 대법관(위원장)과 고등법원 부장판사, 대검 감찰본부장, 법무부 법무실장, 교수, 변호사 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 법조윤리협의회는 규정에 따라 최 변호사 측으로부터 사건 수임 내역을 제출받았는데 이 중 사건을 수임했음에도 선임계가 없는 사건이 7건에 달했다. 최 변호사는 법조윤리협의회의 1차 조사에서 선임계를 내지 않고 사건을 수임한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7건 중 확인된 3건의 수임료 합계가 1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통상 변호사들의 사건 수임 과정은 '약정-입금-선임계 작성' 등의 순(그래픽 참조)으로 이루어진다. 사건을 수임해 위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과 선임계를 작성하는 것은 별도의 과정이다. 현행 변호사법은 선임계를 내지 않은 경우 재판 출석은 물론 수사 단계에서의 수사 참여 등 어떠한 변호 활동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선임계가 없는 전관(前官) 출신 변호사의 비밀 변론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 변호사가 어떤 과정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알 수 없고 세금 탈루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조계에서는 검찰과 국세청 등이 직접 나서 일부 전관 변호사의 선임계 없는 '몰래 변론'을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전관 출신 변호사가 선임계도 없이 담당 수사팀 관계자나 재판부에 전화를 걸거나 직접 방문해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가 문제가 된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출신 선배 중에 변호사 선임계를 내지 않고 수사 과정을 묻거나 훈수를 두는 경우가 과거부터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직 검찰 고위 간부로서 검찰 수사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최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검찰에 직접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최 변호사는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뒤 공직에서 물러나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임계를 내지 않고 수임료를 받는 경우 또 다른 문제는 탈세(脫稅)다. 사건 선임 자체가 신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서 수임료로 수천만~수억원을 받더라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한 법조인은 "선임계를 내지 않는 변론은 곧바로 탈세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소문이 무성한 변호사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세무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 변호사는 "세금 신고는 100% 다 했다"고 해명했다.

서울변호사회 소속의 한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나 감찰 등을 통해 최 변호사가 어떠한 형태로 변호 활동을 했는지, 수사팀이 최 변호사의 압력을 받았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며 "전관 출신 변호사들이 관행적으로 선임계 없이 변호를 한다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단속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