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석 국제부 기자

[2012년 노동개혁 단행한 스페인]

지난해 스페인이 한국에 자동차를 수출한 실적이 전년보다 4배 늘었다. 르노의 QM3라는 차량이 제법 팔렸기 때문이다. 르노는 QM3를 프랑스 본사에서 개발해 스페인에서 생산한 다음 한국에 가져와 팔고 있다.

르노가 부산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데도 굳이 복잡한 경로를 거치는 건 이유가 있다. QM3를 만드는 스페인 북서부 바야돌리드 공장은 노조가 임금 인상률을 1% 미만으로 유지하면서 근로시간을 6.5% 늘리겠다고 회사 측과 약속했다. 공장 내 인력 재배치도 수용했다. 한때 28만대에 이르던 생산량이 10만대 이하로 줄어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자 노조가 결단한 것이다. 대신 회사 측은 바야돌리드 공장에 생산 물량을 몰아주기로 약속했다. 낮은 임금 덕분에 생산성이 높으니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덕분에 작년 바야돌리드 공장은 10년 만에 20만대 넘는 생산량을 회복했다.

바야돌리드 공장은 '유럽의 병자(病者)'로 불린 스페인이 어떻게 되살아났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2012년 스페인은 노동 개혁을 단행했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비정규직 채용을 쉽게 만들었다. 노동계는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했다. 그러자 자동차 회사들이 대거 스페인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포드·르노·닛산·세아트·오펠 등 5개사의 스페인 공장에선 작년 한 해에만 2만5000명을 새로 고용했다.

이웃 프랑스는 스페인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좌파 정부가 노동 개혁에 미온적이고 여전히 강성 노조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스페인의 시간당 인건비가 21.3유로인데 프랑스는 34.6유로다. 르노가 자국을 제치고 스페인 투자를 늘리는 건 당연한 것 아닐까. 작년 프랑스의 자동차 생산량은 182만대였다. 10년 전 366만대의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당연히 일자리가 대거 사라졌다. 독일에 이은 유럽 2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타이틀도 스페인에 넘겨줬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스페인이 아니라 프랑스의 길을 가고 있다. 직원 평균 임금 9700만원으로 1인당 GDP의 3배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은 더 많은 임금을 요구하며 파업을 공언하고 있다. 현대차노조도 국내 생산량을 줄이고 해외에서 많이 생산하면 자기 밥그릇이 줄어든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해외 생산량을 노조와 합의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한다. 하지만 이렇게 경영 간섭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수익이 계속 떨어지면 비용이 많이 드는 국내 생산을 줄이지 않고서는 회사가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프랑스 자동차 노조들이 경영 간섭을 일삼다가 몰락한 전례를 외면하고 싶은 것일까. 르노는 10년 전 48%이던 자국 생산 비중을 19%까지 줄였다.

현대차에는 빨간불이 들어온 지 오래됐다. 수입차의 공세로 국내 시장점유율이 점점 떨어지고, 중국 시장 판매량도 큰 폭으로 줄고 있다. 현대차노조가 스페인식으로 방향을 틀지 않고 계속 프랑스식 운행을 고집한다면 결국 낭떠러지가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