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운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을까. 부부가 이혼에 합의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재판상 이혼 요구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혼인 생활에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상대 배우자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15일 오후 2시 이런 판례를 바꿀지에 대해 대법관 13명 모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선고한다. 50년 이어온 유책주의가 파탄주의(破綻主義)로 판례가 변경될지 관심이다. 파탄주의는 부부의 혼인관계가 사실상 깨진 경우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혼을 청구할 수 있고 이혼을 인정하는 제도다. 대법원이 파탄주의를 채택할 경우 올 초 헌재가 내린 간통죄 위헌 결정 못지않은 사회적 파장이 예상된다.

혼외 자녀를 둔 남편이 15년간 별거해온 아내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개변론이 지난 6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렸다.

남편 A씨는 1976년 B씨와 결혼한 뒤 1998년 내연녀와 사이에서 딸을 낳았고, 2000년부터는 아예 집을 나와 내연녀와 동거했다. A씨는 2011년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외도와 혼외자를 가진 A씨는 혼인관계 파탄의 책임이 있어 이혼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법원과 법률이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유책주의를 택한 것은 여성을 보호하고, 가정 해체를 막기 위해서였다.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요구하는 이른바 ‘축출(逐出) 이혼’을 예방하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유책주의는 적지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실질적으로 부부 관계가 파탄이 났는데도 법원이 혼인 관계를 지속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 동거하면서 자식까지 낳은 경우 여기에서 낳은 자식들은 혼외자(婚外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제 여성이 사회적 지위 향상으로 과거처럼 경제적 약자로서 법적 보호를 필요로하지 않게 된 만큼 유책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라는 지적도 있다.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에 대해서는 거액의 위자료를 물려 책임 추궁이 가능한데도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바람 핀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하는 게 우리나라 국민 정서에 맞지 않아 여전히 유책주의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6월 A·B씨 부부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 공개변론에서도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를 둘러싸고 적지않은 논쟁이 벌어졌다.

A·B씨 부부의 이혼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양소영 변호사는 “부정행위를 한 사람이 ‘이제는 혼인이 파탄 났으니 해방시켜 달라’며 권리를 남용하는 것을 법이나 판례로 보호할 수는 없다”며 “유책 배우자의 인권보다는 상대 배우자와 자녀의 행복추구권, 생존권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이혼을 인정해야 한다는 김수진 변호사는 “유책주의가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뒤 본처를 쫓아내기 위한 '축출(逐出) 이혼'을 억제해 과거 여성과 가정을 보호하는 데 기여해온 것은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더는 축출 이혼이 문제 되는 시대가 아니다”며 “유책주의를 엄격하게 고수하면 이혼소송에서 상대방의 잘못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반목과 증오만 키우게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