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대(對)일본 외교 사절단인 조선통신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겠다고 나선 한·일 대학생 50여명이 6일 아침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모였다. 2013년 시작돼 올해로 3년째를 맞는 '21세기 유스(youth) 조선통신사' 행사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조선통신사가 입었던 붉은 도포를 연상시키는 빨간 조끼를 입고 배낭을 둘러멘 이들은 만나자마자 영어와 손짓을 섞어가며 좋아하는 팝송과 즐겨보는 드라마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일 관계, 이 친구들처럼 해야 해요." 행사 주최자인 비영리법인(NPO) '한중일에서 세계로' 우시오 게이코(66) 대표는 "한·일 관계사에도 밝은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행사를 시작했는데 참가자들이 금세 친구가 돼 해묵은 양국 갈등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17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조선통신사가 열두 차례 일본 땅을 밟았던 200여년은 한·일 관계사에서 드물게 훈풍이 불던 시기였다. 우시오 대표는 "조선은 임진왜란(1592~1598)의 상흔이 채 아물기 전인 1607년부터 일본과 교류를 재개했는데, 이때 양국 간 믿음과 관계를 돈독히 한 것이 조선통신사였다"고 설명했다.
두 나라에서 모인 53명(한국 28명, 일본 25명)은 9월 5~14일 열흘 동안 서울을 출발해 경북 문경새재, 영천, 경주, 울산을 거쳐 부산까지 걷고, 이달 19일부터는 일본으로 넘어가 28일까지 오사카, 교토를 거쳐 조선인가도(朝鮮人街道·조선통신사가 지나간 길), 시즈오카, 하코네 옛길 등 조선통신사의 일본 내 여정을 따라 걷게 된다.
일본 시가국립대학생 사이토 마사유키(21)씨는 "어머니가 한국인이어서 늘 나의 한 부분은 한국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한국의 작은 도시 곳곳을 두 발로 밟고 한국인 친구들을 사귈 생각에 들떠 있다"고 말했다. 장안대학생 김광희(23)씨는 "양국 정치·역사 갈등을 얘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 여정에서 만난 일본인 참가자들과 진짜 친구가 되는 것"이라며 "먼저 서로를 알아가야 속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학생들 중엔 한·일 간 역사 갈등에 대해 나름의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일본 긴키대학생 가네시마 사아야(22)씨는 "지난해 꼬박 1년을 부산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지만 학교에서 위안부 관련 반일 시위가 벌어지는 통에 한국 학생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면서 "한국에 있을 때는 일본인인 것을 숨기고 다녔는데, 여기서 만난 한국 참가자들이 일본인인 나를 친구처럼 맞아줘 기뻤다"고 했다. 일본 도카이대학생 가쓰마타 다이스케(24)씨는 "2년 전 한국에 왔을 때 수퍼마켓에서 내가 일본인인 것을 안 한 한국인이 '독도는 어느 나라 땅인지 답하라'고 다그쳐 당황했다"면서 "일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무작정 한국 입장만 동조하라고 강요하는 한국인도 있는데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는 마음을 터놓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행사를 후원하는 한국체육진흥회 선상규(68) 회장은 "요즘같이 한·일 관계가 껄끄러울 때일수록 이렇게 젊고 거침없는 '조선통신사'들이 필요하다"면서 "젊은 친구들의 작은 노력이 한·일 관계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