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주필

미국에서는 가상 금융전쟁 게임 대회가 열리곤 한다. 국방부 산하기관이 매년 주최하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이 미국팀·중동팀·유럽팀·일본팀으로 갈라져 1박2일 동안 전쟁 게임을 해보는 것이다.

이 게임에는 강대국 통화가 동원되고 천연자원도 킬러 무기이다. 금리·환율 정책은 핵심 전략 물자이다. 가상 금융전쟁은 미·일 연합군이 중동의 원유 값 인하에 어떻게 맞서고 유럽·일본이 미국 금리 인상에 어떤 대응을 하는지 보여준다고 한다.

가상 금융전쟁에서 중국팀의 존재는 클 수밖에 없다. 중국은 미국 채권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데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다. 중남미·아프리카에서 나오는 자원을 통째로 구매해가는 큰손이기도 하다. 2015년은 이런 중국의 경제 파워에 또 다른 의미를 보탠 해이다.

중국은 그동안 '세계의 공장'으로서 값싼 상품을 전 세계에 공급한 제조업자 역할에 충실했다. 또 온갖 자원과 기계류를 수입하며 구매력을 무기로 영향력을 과시했다. 여기에 중국은 올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증시가 폭락하면 전 세계 주가가 동시에 폭락하는 공식이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상하이·선전 주가가 폭락하면 미국은 오르고 일본·한국은 하락하는 식이었다. 파장이 엇갈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올 들어서는 중국 증시 붕괴가 전 세계에 동시 테러를 감행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중국이 가상 전쟁 게임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 다른 경제권의 이익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2015년은 그러나 중국이 두 가지 불신(不信)을 또렷이 드러낸 해이기도 하다. 내부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고, 나라 밖에서는 경제정책은 물론 통계조차 믿기 어려운 나라로 낙인찍혔다. 우선 중국 경제를 보는 외부 시선의 변화부터 짚어보자.

시진핑 정권은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등극시키겠다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그래서 한국에도 위안화 거래소를 허용해주었다. 올봄에는 리커창 총리가 IMF 총재에게 위안화를 IMF 특별인출권(SDR) 구성 통화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달러·유로·엔·파운드로 짜인 4강(强) 통화에 위안화가 추가되면 중국이 얻는 이득은 헤아리기 힘들다. 중국 정부와 중국 기업들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싸게 조달할 수 있고, 위안화 차관을 앞세워 해외 자원시장과 수출 시장을 확장하기도 쉽다.

IMF는 중국의 요청을 딱 잘라 거부했다. 위안화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이유를 댔다. 우리나라도 1996년 OECD 가입을 앞두고 체력에 맞지 않게 원화 강세를 고집했었다. 중국도 SDR 회원권을 확보하려고 위안화 가치를 높게 유지해온 것이다.

결국 지난달 위안화 폭락을 통해 정부가 환율을 억지로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역시 중국은 멀었다"는 평가와 함께 '가슴 근육은 훌륭하지만 두뇌가 모자란 나라' '승용차 면허로 점보 비행기를 몰고 있는 나라'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말았다. 일부 연구소는 '중국이 녹아 내린다(China Meltdown)'는 과장된 분석까지 내놨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우리가 들었든 바로 그 표현이다. 위안화 폭락 후에도 중국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외화 유출을 막고 나선 것을 보면 IMF 위기 때 실패한 우리 정책을 잘못 배워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더 심각한 것은 내부 불만의 누적이다. 계층 간 양극화, 도시·농촌 간 빈부 격차 속에서 주가·부동산 값 폭락에 대한 정부 정책은 도무지 먹히지 않고 있다. 부양 자금을 퍼붓고 금리도 내렸지만 통하지 않는다. 국민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때마침 성장률은 하락하고 있다. 기업도 지방정부도 부채 더미에 눌려 있다.

1자녀 정책의 여파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원정 출산 규제 논쟁을 불러온 것도 중국인들이다. 2012년 미국령(領) 사이판에서 출생한 신생아의 70%가 중국인 부모를 두고 있었다. 뉴욕·캘리포니아엔 중국 임신부들의 원정 출산으로 돈을 버는 회사들(月子中心)이 200개 이상씩 번성하고 있다고 한다. 나라는 강해졌다지만 자식만큼은 꼭 미국에 보내고 싶다는 중국인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이런 중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톈안먼 망루에서 사상 최대의 인민군 퍼레이드를 참관했다. 6·25 전쟁의 중공군, 미국과 안보 동맹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는 중국 경제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대차대조표에서 많은 항목이 중국이 가는 길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군사력만으로 국민을 잘 살게 만들지 못한다는 진리는 소련이 증명했다. 그렇다고 중국이 소련처럼 푹석 무너질 것이라고 지레 비관할 필요는 없다. 2~3년 고생으로 끝날지, 10~20년 장기 침체로 갈지는 지금부터 중국 하기 나름이다. 다만 당(黨) 주도의 통제경제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중국이 미국 엄마들이 아이 낳으러 가는 샹그릴라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