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엔 누구나 유명인이 될 기회가 생길 것이다."

앤디 워홀이 말했던 '미래'가 지금 도착했다. 대도서관, 씬님, 양띵, 쿠쿠크루…. 요즘 10~20대에겐 수퍼스타로 대접받는 인터넷 BJ(방송진행자)다. 아이돌도 아닌데 수만~수십만 명의 팬클럽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이 방 안에서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뚝딱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는, 이른바 '1인 방송' 콘텐츠를 정기 구독하는 사람만 500만명이 넘는다.

지난 28일 열린 1인 방송 BJ들의 팬미팅 '유튜브팬페스트 코리아 2015' 현장. BJ들이 무대에 올라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울지 마, 이 사람아! 왜 울어!" 지난 28일 화장·패션 등을 주제로 방송하는 BJ 씬님(본명 박수혜·24)의 사인회를 찾은 이정현(11)양은 그와 악수를 나누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돌 가수의 팬미팅 현장과 다를 게 없었다. 이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BJ들의 사인회 및 팬미팅 현장은 그들의 인기를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유튜브 주최로 열린 이 행사엔 씬님을 비롯, 기타리스트 정성하, 게임 BJ 도티 등 다양한 분야의 인기 BJ들이 참석했다. 부산 등 전국에서 온 수천 명의 10~20대들은 BJ의 사인을 받으려고 몇 시간 동안 줄을 섰다. 거창에서 온 장보라(12)양은 "우리 반 친구 중 절반이 인터넷 방송을 즐겨 본다"고 말했다. BJ들이 특별 공연을 하는 팬미팅 행사는 1만원짜리 티켓 1000장이 하루 만에 매진됐다.

인터넷 1인 방송의 인기 요인은 완성도에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팬들이 '콘텐츠 퀄리티 너무 높이지 마세요'라고 부탁해요." 20대 또래 친구들로 이뤄진 쿠쿠크루는 뜨거운 어묵 빨리 먹기, 팬티 입고 오줌 싸기 등 반쯤 장난 같은 이벤트를 벌이는 모습을 찍어 올린다. 이 영상들엔 "나도 저런 바보 같은 장난 해보고 싶다" "'무한도전'보다 더 무식하게 웃긴다"는 등의 댓글이 달린다.

BJ들은 게임·패션에 관심 많은 10~20대에게 유용한 정보를 친근하게 전달한다. 구독자 수가 107만명에 달하는 BJ 대도서관(본명 나동현·37)은 "사람들은 BJ를 연예인처럼 먼 존재가 아니라 형이나 친구처럼 본다"며 "보통 사람들 눈높이에 맞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게 우리 강점"이라고 했다. '마이리틀텔레비전' 같은 지상파 프로그램들은 이들 1인 방송의 포맷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다.

지난 28일 열린 1인 방송 BJ들의 팬미팅 '유튜브 팬페스트 코리아 2015' 현장. 인기 BJ 대도서관(위쪽 사진)의 특별 공연. 인기 BJ 씬님이 중세의 공주로 분장하고 팬들 앞에서 분장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아래 사진).

"요즘 우리 반 장래 희망 1위가 BJ예요." 팬미팅 현장에서 만난 10대들 중에는 "BJ가 되는 법을 배우려고 왔다"는 이가 많았다. 대도서관 같은 인기 BJ들은 한 달 수입만 수천만원이다. 유튜브 관계자는 "초등학생 중에도 인터넷 방송으로 월 수백만원을 버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이미 BJ들은 수퍼스타다. 이날 행사엔 유튜브 구독자 900만명이 넘는 미국의 인기 BJ 베서니 모타(Mota·19)도 참석했다. 1인 방송으로 미국 최고의 뷰티·패션 아이콘 중 하나가 된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인터뷰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 그는 한국 팬을 위한 깜짝 이벤트로 '조선시대 왕비처럼 화장하는 법'을 시연해 열광적인 호응을 받았다.

"유명인이 되더라도 인기가 딱 15분 정도 갈 것이다." 앤디 워홀은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를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인터넷 방송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 등 일부 장르에 인기가 집중돼 있고, 욕설 등 부적절한 표현을 제재하기 힘들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1인 방송은 신선하고 거친 매력이 있지만, 단순하고 콘텐츠 질이 들쑥날쑥하다는 단점도 있다"며 "개인의 창의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1인 방송의 매력을 살리며 콘텐츠 질도 확보하는 시스템 정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