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 더위를 이기지 못해 사기 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아파트 경비원을 거짓말로 속여 현금 5만원을 챙긴 혐의로 김모(36·무직)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사건이 일어난 날은 본격적으로 가을이 오기 시작한다는 처서(處暑·8월23일) 닷새 전인 18일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에 사는 김씨는 이날 붕대를 팔에 감은 채 강남구 청담동 아파트 단지를 기웃거렸다. 김씨는 나이가 여든이 넘은 한 경비원에게 다가가 “나는 이 아파트 ○○○동 ○○○호에 사는 주민”이라며 “팔을 다쳐서 지금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니 택시비 5만원만 빌려 달라”고 말했다. 경비원은 미심쩍은 듯 바라봤지만 김씨가 호통을 치며 급하게 재촉하는 바람에 5만원을 내줬다.

하지만 경비원은 의심이 계속 들어 김씨가 말한 ○○○동 ○○○호에 찾아갔다. 문을 열고 나온 주민은 “김씨는 모르는 사람”이라며 “우리 집엔 팔을 다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경비원은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마침 현장 부근을 순찰 중이던 청담파출소 직원들이 경비원에게 김씨의 인상착의를 듣고 아파트 일대를 빠르게 수색했다.

경찰은 5분 만에 김씨를 찾을 수 있었다. 큰 덩치에 반팔 티셔츠를 입은 김씨가 경찰차를 보자 급히 다른 방향으로 몸을 틀었고, 경찰이 다가가 김씨의 팔을 살펴 보니 붕대를 감은 자국도 있었다. 김씨는 5만원을 내놓으며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김씨는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김씨는 "고시원에 에어컨이 없어서 찜통 같은 방 안에 갇혀 두 달 동안 여름을 보내고 나니 너무 힘들었다"며 "돈이라도 훔쳐서 오늘 밤만은 찜질방의 시원한 얼음방에서 자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했다.
/윤동빈 기자 ydb@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