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쓰다 내버려둔 폴더폰 냈어요. '진짜'는 가방 안에 몰래 넣어놨죠."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의 한 고등학교 조회 시간. 담임교사가 "휴대전화를 모두 제출하라"고 하자 학생들이 차례로 교탁 위 '휴대전화 보관 가방'에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모(17)양은 자신의 스마트폰 대신 집에서 가져온 구형 폴더폰을 냈다. 이양은 지난 학기에도 고장 난 휴대전화를 냈다가 적발돼 반성문을 썼다. 이양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심심하고 불안해 '가짜' 폰을 제출했다"고 했다.
개학을 맞은 전국 중·고교에서 휴대전화를 수거하려는 교사와 내주지 않으려는 학생들 사이에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 대다수 중·고교는 '수업에 방해가 된다'는 등의 이유로 학교장 재량에 따라 매일 오전 학생들로부터 휴대전화를 거둬 수업이 끝나는 오후 5시쯤 돌려주고 있다. 그러자 일부 학생은 개통 해지된 일명 '공(空)기계'나 고장 난 휴대전화를 제출하고 진짜 스마트폰은 감춰놓고 있다.
부산 동래구의 한 고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 김모(여·27)씨는 아침마다 '가짜' 휴대전화를 가려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조회 시간에 학생들이 제출한 휴대전화 35대 가운데 4개를 무작위로 골라 전원을 켜 본인 전화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 그러자 일부 학생은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교사에게 들키면 유심(USIM) 칩을 빼놓고 제출하기도 한다. 다른 스마트폰에 유심 칩을 끼우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거둬들이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의 고교생 정모(17)양은 "선생님들이 '스마트폰으로 온종일 카카오톡밖에 더 하느냐'고 하지만 쉬는 시간에 영어 단어 검색이나 인터넷 강의를 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학생 스스로 자제하면서 쓸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아예 빼앗아버리니 반발심만 생긴다"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5월 전국 초·중·고교생 142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스마트폰이 없으면 심각한 금단 증상을 보이는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은 15만1915명(10.6%)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엔 고교 2학년 학생이 평일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하는 학교 측 방침이 지나치다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 '인권 침해'라는 의견을 얻어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 제한에 부당함을 느끼고, 학교 측도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면 학생이 공감할 수 있는 설득과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