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예비역 육군중장

북한의 지뢰 및 포격 도발로 최고조에 이르렀던 한반도 긴장 상황이 북측의 '지뢰 폭발 유감 표명'과 남측의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종결되었다. 우리 확성기는 계속 열려 있고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도 풀어나가기로 했으니 그만하면 원만한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도발 주체가 불분명한 '유감 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없다는 것이 좀 아쉽다. 이런 정도로 국민에게 약속한 도발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우리가 남북 관계를 주도해 나가려면 어차피 한 번은 북한의 상습적인 도발 의지를 꺾고 교훈도 주어야 할 상황이고 이번이 그 좋은 기회인데 그것이 가능할지 걱정이다.

사실 북한이 1993년 이후 22년 만이라는 최고 수준의 '전선지대 준(準)전시상태 선포'를 하며 애써 긴장을 높이고 우리는 '화전(和戰) 양면 전술'이라며 조심스러워했지만 냉철하게 보면 북한은 처음부터 전면도발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한·미연합훈련 중이었고, 9월 3일 전승절 행사를 눈앞에 둔 중국도 북한의 긴장 조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으며, 북한 역시 핵심 전력이 10월 10일 평양 열병 행사에 차출되어 있었으니 북한이 바보가 아닌 한 도발은 몰라도 전면전쟁은 가능할 턱이 없었다.

도대체 북한은 왜 그랬을까? 하긴 이번에는 도발 주체를 불명확하게 하는 등 나름 주의도 했다. 그러면서 5·24 조치 때도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해서 막은 적이 있으니 우리가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러다가 우리 확성기 방송 심리전에 '최고 존엄' 김정은의 급소가 찔리자 북한은 허겁지겁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인 '전쟁 협박'에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던 것이다. 결국 북한의 그 모든 전쟁 준비 행동이 확성기 방송 중단을 위한 고위급 협상 지원용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러나 그것도 너무 나갔다. 어느 북한 전문가의 말대로 그런 상황은 한·미 군사동맹과 한·미·일 군사 공조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반면 중국의 입장은 더욱 곤혹스럽게 할 것이 분명하고, 북한 역시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는 전시동원 상태를 장기간 지속할 수는 없는 데다가 야전부대라도 전시상태로 오래 내버려 두는 것은 무리가 많기 때문이다. 실은 그래서 전선 포병과 특수작전 부대, 특히 잠수함까지 추진 배치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이 협상을 오래 끌고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동시에 지금이야말로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어놓을 결정적 기회라는 믿음도 생겼다. 예컨대 이번 사태의 전말을 보면 북한의 확성기 방송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거부감을 알 만하다. 그렇다면 2003년 노무현 정부 초기 북한이 온갖 감언이설로 '방송 중지'를 애걸했던 전광판 방송에 대한 공포는 어떨 것인가? 만약 북한이 화전양면 전술로 나왔을 때 우리가 '전광판 재방송'으로 압박했다면 어땠을까? 좀 더 성공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는 없었을까?

어쨌건 이번 갈등은 일단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진짜 과제는 뒤로 미뤄졌을 뿐 끝난 것은 없다. 사이버전과 테러 등 북한의 은밀한 도발 수단은 여전히 다양하고, 머지않아 북한의 핵미사일들이 배치되면 북한의 도발은 더욱 대담해질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번에 우리는 북한의 가볍지 않은 취약점들과 함께 우리 국민의 의연함과 젊은이들의 든든한 안보 의지를 보았다. 확고한 한·미 연합방위 태세와 중국의 유연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북 관계 발전 약속은 덤이다. 한반도의 미래가 아직은 우리의 비전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는 온 국민의 일치된 의지와 국가적 지혜로 너무 늦기 전에 그 기회를 서둘러 잡아채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