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회를 뒤흔들었다. 장기 독재 정권들이 잇달아 무너졌고, 민주화를 재촉하는 선거가 열렸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독재자는 사라졌지만, 정쟁과 혼란이 뒤따랐다.

‘북아프리카의 맹주’로 불리던 이집트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36년 동안 권력을 잡았던 호스니 무라바크 대통령이 민주혁명으로 실각했다. 이집트 사상 첫 민주 선거로 당선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은 1년 만에 군부 쿠데타로 밀려났다. 무르시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탈옥, 간첩 혐의 등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반정부 시위와 정권 교체 과정에서 폭력 사태도 벌어졌다. 이집트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중 약 3%를 차지하는 관광 산업이 특히 큰 타격을 받았다. 아랍의 봄 직전인 2010년, 이집트를 찾은 관광객은 1470만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홍해 연안과 수도 카이로, 고대 이집트 유적지인 룩소르와 아스완은 유럽인 사이에서 인기 관광지로 꼽혔다.

하지만 시위가 유혈 사태로 확대되자 유럽 정부들은 이집트에 대한 여행 자제령을 내렸고, 크루즈 선사들은 이집트의 항구를 노선에서 제외했다. 이집트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2010년 2억5000만파운드 수준이던 관광 수입이 2014년 1050만파운드로 95% 감소했다.

하니 셀림 주한이집트대사는 “사건의 맥락과 이집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언론 보도 때문에 이집트의 정치 상황을 오해하기 쉽다”며 이집트의 민주화 혁명이 좌절됐다는 평가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쳤다.

아랍의 봄 이후 4년. 이집트는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수에즈 운하를 확장한 ‘제2 수에즈 운하’를 건설했고, 운하 인근에는 경제·산업·관광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집트의 경제 현황과 사회 상황에 대해 묻기 위해 하니 셀림(Selim) 주한이집트대사를 서울 용산구 대사관에서 만났다.

―2011년 민주화 혁명으로 무라바크 정권의 장기 독재가 끝났지만, 민주선거로 뽑힌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도 1년 만에 군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집트의 민주화 혁명이 좌절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2012년 첫 민주 선거를 치렀다. 당시 이집트 유권자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집권할 때 총리를 지낸 아흐메드 샤피크 후보, 무슬림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후보 등 단 둘 뿐이었다. 친(親)혁명 성향의 후보들은 단일화에 실패해 힘을 잃었다. 첫 민선은 결국 구(舊)정권의 후보와 이슬람교 근본주의 후보간 대결로 좁혀졌다

무르시 전 대통령은 근소한 표차로 당선됐다. 문제는 무르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다음, 비민주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을 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고 이슬람교 이외의 종교인을 차별하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했다. 이집트 국민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수도 카이로를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그러자 무르시 전 대통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테러 집단을 불러들였다.

이집트 군부는 정권을 잡기 위해서가 아닌, 테러 세력으로부터 이집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무르시 정부의 퇴진 이후 군부 주도로 대선이 실시됐고,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집트 정부는 올해 안에 총선을 시행해, 국회를 구성하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선거법 개정 등 작업이 끝나면 오는 10월 또는 11월 중에 총선을 시행할 예정이다. 올해 안에 새 의회를 출범시켜 정치권을 안정시키는 게 이집트 정부의 구상이다.”

*국방장관 출신인 엘시시 현 이집트 대통령은 2013년 군사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이다. 지난해 6월 치러진 대선에서 득표율 96.6%로 당선됐다.

―현재 이집트 정부의 최대 과제는 무엇인가. 아직 정치·사회적으로 완전히 안정된 상태는 아니지 않나.

“국내적으로는 사회와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제적으로 이집트의 위상을 되찾는 것이다. 대규모 혁명이 벌어진 다음에는 어떤 나라든 5~10년 동안 정치, 사회적인 전환기를 겪는다. 이집트는 지난 3년 동안 두 번의 혁명을 겪었다. 첫 번째는 2011년 1월 독재 정치를 한 무바라크 대통령, 두 번째는 무함마드 무르시 당시 대통령 정부에 대한 저항이었다.

국내에선 사회 안정이 최우선 목표다. 국내 정치, 사회가 불안하면 국제 무대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지난 2013년 7월 이집트 정부는 경제 로드맵을 만들었다. 헌법도 개정됐다. 이집트를 민주적이고, 인권을 존중하고, 정치적인 안정성과 자유를 지향하는 나라로 정의한 개정 헌법은 국민투표에서 90%의 찬성표를 받았다. 남은 건 새 국회 구성이다.

국제적으로는 이집트의 지위를 회복하는 게 주요 과제다. 이집트는 아랍과 아프리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민주화 혁명과 그로 인한 후폭풍을 겪으면서 국제 무대에서 이집트의 위상이 위축됐다. 경제적인 타격을 입은 영향도 컸다.”

―최근 중국과 경제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미국보다 중국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본 건가.

“이집트는 ‘균형 외교’를 표방한다. 이집트는 미국과 전통적인 동맹국이다. 미국 대신 중국을 택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과도 외교관계를 그만큼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이집트의 시장과 경제를 개방하고, 한 나라에만 치우치지 않는 외교 관계를 맺는 게 목표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선 아랍 국가들과도 협력한다. 시나이반도에서는 이슬람국가(IS) 등 테러 세력이, 이집트 본토에선 이슬람형제단 등 극단주의 세력이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이집트군이 대응하고 있다. 앞으로 몇 달 안에 테러 집단을 이집트에서 완전히 몰아낼 수 있다고 본다.”

―경제 분야의 주요 정책은 무엇인가. 올해 경제 전망은 어떤가.

“경제 분야의 과제는 건설 개발과 투자 유치, 두 가지다. 두 번의 혁명을 거치면서 이집트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관광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외국인 투자가 줄면서 자본도 많이 빠져나갔다.

건설 개발 사업으로 이집트 정부는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한 전력발전시설과 물류, 운송 등을 위한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수에즈 운하 지역은 국제적인 경제, 관광, 산업, 물류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한국의 세종시 같은 행정수도를 포함해, 신도시를 6곳 세울 예정이다.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고 신도시를 육성해 외국인이 이집트에 투자할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한국, 중국 기업도 이집트 정부의 건설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제2수에즈 운하가 지난 6일 개통했다. 경제적인 기대효과는 얼마나 되나.

“2015년 기준으로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12%가 수에즈 운하를 지난다. 전 세계의 경기가 침체한 상황 등을 반영해도, 2023년에는 전체 해상 물동량의 20%가 수에즈 운하를 통할 것으로 전망한다. 기존의 수에즈 운하는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길었다. 제2 수에즈 운하가 개통하면서 양방향 통행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는 선박이 늘어날 것이다.

제2 수에즈 운하가 개통하면서 운하를 이용하는 선박이 늘어나면, 재정 적자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하루 평균 선박 49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데, 2023년에는 평균 97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통행료가 비싸질 것이란 관측이 많은데, 요금은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해상운송 업황과 물동량, 국제 경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반영된다.”

*수에즈 운하청은 운하 통과 시간은 18시간에서 11시간으로, 8~11시간이던 대기 시간은 3시간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연 50억달러 수준인 통행세 수입은 오는 2023년 150억달러로 증가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집트 정부의 재정은 적자 상태이고 외국인 자본을 유치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운하 건설 자금은 어떻게 마련했나. 중국 정부가 차관을 제공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제2 운하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만에 완공했다. 건설 비용은 순수하게 국내 자본이다. 이집트 국민을 대상으로 150억달러 규모로 국채를 발행했는데, 6일 만에 다 팔렸다. 이집트 경제를 살리겠다며 국민들이 나섰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진행한 것과 비슷하다. 자금 조달부터 건설, 완공까지 모든 과정이 기적 같다.”

―관광 산업은 얼마나 회복됐나.

“민주화 혁명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유럽 관광객은 독일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혁명 이전에 근접하게 늘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시장은 아직 회복 단계다. 그동안 해마다 3만6000명의 한국인이 이집트를 찾았었는데, 현재 1년에 2만명 미만으로 줄었다.

이집트 정부는 한국 관광객을 연간 5만~6만명 유치하는 게 목표다. 한국은 기독교 인구가 많은 만큼, 성가족이 이집트를 탈출한 길과 시나이 반도 등 기독교 성지를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다. 기독교 교회가 첫 번째로 생긴 곳도 이집트다. 역사 유적지 투어도 추천한다. 룩소르박물관에는 이집트 고대 유물 중 3분의 1이 소장돼 있다. 피라미드를 포함해, 옛 이집트 건축물과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다.”

―이집트와 한국의 경제적인 협력 관계는 어떤가. 어떤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하고 싶나.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이 이집트에 기여한 바가 크다. 2011년과 2013년 반정부 시위와 혁명이 이어지자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집트를 떠났다. 유일하게 한국과 중국 기업들만 계속 이집트에 투자했다. 2012년에는 삼성전자가 2억달러를 투자해 텔레비전 조립 공장을 세웠는데, 이 공장은 현재 이집트의 주요 수출창구가 됐다.

정부간 협력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2년 12월과 2013년 1월에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이집트를 방문해 이집트의 기업과 산업구조에 대해 분석하고, 소프트론(금·미 달러화 등 국제통화로 빌려준 자금을 현지통화로 상환하도록 허용하는 차관)과 개발사업에 대해 조언했다.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은 다양한 경제개발사업을 30~40가지 제안했다.

한국무역협회(KITA)와 경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고, 이집트의 항구 개발 사업을 위해선 부산항만공사와 협력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이집트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아프리카에서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할 후보로 이집트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우선 검토 중이다. FTA 체결 가능성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이집트는 국내투자와 개발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제조업 등 산업 기반을 다지고 수출 상품군을 갖추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과 이집트간 무역 규모는 2011년 30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집트의 수출액은 10억달러, 한국 수출액은 20억달러로 균형이 맞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 중국 정부 차원의 투자와 중국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경쟁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기술과 혁신이다. 이집트뿐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를 공략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일본, 중국 기업이 제공하지 못하는 기술과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자금 조달 방식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도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셀림 대사는 “이집트를 수출시장으로만 보지 말고, 문화 교류의 대상으로도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이집트는 오랜 문명과 역사를 가진 나라인만큼, 고대 유물부터 현대 미술, 춤과 노래 같은 공연 등 문화가 발달한 나라”라며 “대사로서, 한국과 이집트의 문화를 잇는 다리를 놓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