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고유의 유적이다. 왕릉 개개의 완전성은 물론이고 한 시대의 왕조를 이끌었던 역대 왕과 왕비에 대한 왕릉이 모두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가치가 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는 요즘,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보존되어 있는 조선왕릉을 찾아 떠나보면 어떨까.
조선을 세운 1대 태조의 '건원릉'
건원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능이다. 1392년 7월 17일 수창궁에서 스스로 왕위에 올랐고, 그다음해에는 국호를 '조선'이라 하고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명나라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사대정책을 썼고, 숭유배불 정책을 내세웠으며 농본주의를 통해 농업을 장려하였다. 건원릉은 조선 왕릉 제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 능제는 전체적으로 고려 공민왕의 현릉을 따르고 있으나 석물의 조형과 배치 면에서 차이가 있다.
조선의 왕 중 적장자로 왕위에 오른 최초의 왕 문종의 '현릉'
조선의 5대 왕인 문종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맏아들이다. 1421년(세종 3) 8세의 어린 나이에 세자로 책봉되었고, 1450년(세종 32) 3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이는 조선이 건국된 이래 적장승계의 원칙에 따라 등극한 최초의 임금이었다. 1450년 왕위에 올랐지만, 몸이 약하여 재위 2년 4개월 만에 병사하였다. 현릉의 예처럼, 같은 능의 이름 아래 있지만, 왕과 왕비의 능을 각각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능을 동원이강릉이라고 한다.
방계 출신의 왕족 선조의 '목릉'
선조는 선왕 명종의 조카이다. 명종은 어린 나이의 순회세자를 잃고 자식 잃은 슬픔을 달래려고 여러 왕손을 궁궐에 자주 불렀다. 하루는 명종이 익선관을 벗어 왕손들에게 주며 써보라고 하였다. 다른 왕손들은 돌아가면서 익선관을 써보았지만, 제일 나이가 어린 선조는 머리를 숙여 사양하였다. "이것을 어찌 보통 사람이 쓸 수 있겠습니까?" 선조는 이렇게 아뢴 뒤 어전에 도로 가져다 놓았다. 이를 본 명종은 매우 기특하게 여기며, 그에게 왕위를 전해줄 뜻을 정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조선왕조서 최장 기간 재위한 영조의 '원릉'
영조는 무수리에게서 태어난 숙종의 서자이다. 비록 왕자이긴 하였으나 어머니의 신분 때문에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궁궐 외곽의 초라한 집에서 천시받으며 어렵게 성장하였다. 경종이 즉위한 1721년에 경종의 건강이 좋지 않고 아들이 없는 것을 이유로 왕세제에 책봉되었다. 즉위 후 과감하고 개혁적인 조치들을 단행하여 조선 후기 나라의 기틀을 재차 다지는데 큰 공을 세웠다. 1776년(영조 52) 3월 5일 춘추 83세로 경희궁 집경당에서 승하하였다.
왕실의 어른으로 천수를 누린 장렬왕후의 '휘릉'
1624년(인조 2) 인천부사이던 한원부원군 조창원의 딸로 태어났으며, 15세의 나이로 1638년(인조 16) 12월 2일 인조의 계비로 간택되어 어의동 본궁에서 가례를 올리고 왕비로 책봉되었다. 어린 나이에 인조의 계비로 궁에 들어와 남편을 일찍 여읜 장렬왕후는 효종, 현종, 숙종 3대의 왕이 인조의 뒤를 잇는 동안 자의대비라는 이름 아래 왕실의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현종과 명성왕후가 나란히 잠들어있는 '숭릉'
현종은 효종과 인선왕후의 아들로, 효종이 세자의 몸으로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1641년(인조 19) 2월 4일 그곳에서 태어났다. 조선 역대 왕 중에 유일하게 외국에서 출생한 왕이다. 왕비인 명성왕후는 지능이 뛰어나고 성격이 과격했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에 궁중의 일을 다스림에서 거친 처사가 많았고 숙종 즉위 초에는 한 때 수렴청정하기도 했다.
의젓하고 총명했던 단의왕후의 '혜릉'
단의왕후는 1696년(숙종 22) 11세의 어린 나이에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의젓함과 총명함으로 궁궐의 어른들과 병약한 세자를 섬기는 데 손색이 없었다고 전하는데, 경종이 즉위하기 2년 전인 1718년(숙종 44) 2월 7일 병을 앓다가 3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추봉했다.
22세에 요절한 추존왕 문조의 '수릉'
추존 황제 효명세자 문조(文祖)는 24대 왕 헌종의 아버지다. 1812년(순조 12)에 왕세자로 책봉돼 1827년(순조 27)에는 19세의 나이로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다. 어린 효명세자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하였을 시기에 대리청정을 통해 강인한 군주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원래 몸이 약했던 그는 아들을 얻은 이후 1830년(순조 30) 5월 6일 22세의 젊은 나이에 창덕궁 희정당에서 요절하였다. 수릉 이전의 왕릉은 일반적으로 봉분 앞이 상·중·하계 3단의 높이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수릉에서는 중계와 하계가 합쳐졌다. 이는 신분제도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왕의 영혼이 깃든 공간이 상계, 문인의 공간이 중계, 무인의 공간이 하계다)
헌종과 두 왕비가 나란히 묻힌 '경릉'
헌종은 4세 때인 1830년(순조 30) 5월에 아버지 효명세자를 여의고, 그해 9월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1834년 8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15세부터 친정을 펼쳤지만, 혼란스러운 정국을 뒤로하고 1849년(헌종 15) 6월 6일 23세의 어린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경릉(景陵)은 세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는 조선 왕릉 중 유일한 삼연릉 형태이다. 제일 우측의 능침이 헌종의 것이고, 가운데가 효현왕후 능침이며, 좌측이 계비 효정왕후 능침이다.
주소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조선 최초의 반정으로 폐위된 연산군의 '연산군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과 부인 신씨(愼氏)의 능이다. 연산군은 실정이 극심하여 중종반정으로 폐위되고 1506년(중종 1) 연산군으로 강봉되어 같은 해 9월 강화군 교동에 유배되었다. 그해 11월 유배지에서 죽어 강화에 장사지냈다가 1512년 12월 폐비 신씨의 진언으로 그 이듬해 현재의 위치로 천장하였다.
주소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77
수렴청정의 권력자 문정왕후의 '태릉'
문정왕후는 1501년(연산군 7) 10월 22일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로 태어났다.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가 1515년(중종 10) 인종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하자, 2년 뒤인 17세 때 왕비로 책봉되었다. 1545년 아들인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문정왕후는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면서 모든 권력을 손에 쥐었다. 태릉은 왕이 아닌 왕비의 단릉(單陵)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웅장한 느낌을 준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명종의 '강릉'
조선 13대 임금인 명종과 왕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명종은 12세의 나이로 즉위해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20세가 되던 해인 1553년(명종 8)에는 친정을 하게 되었다. 명종은 외척을 견제하고 고른 인재 등용을 하려 했으나, 당쟁과 파당의 문란한 정치를 막을 길이 없었다. 명종은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 1567년(명종 14) 6월 28일 경복궁 양심당에서 34세의 나이로 승하하였다.
주소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681 ㅣ 전화 (02) 972-0370 , (02)948-5668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이 묻힌 '의릉'
20대 왕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의 능이다. 경종은 1688년(숙종 14) 10월 27일 숙종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왕궁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나인 출신의 희빈 장씨이다. 경종은 1720년 6월 13일 33세의 나이로 즉위했지만, 4년간의 재위 시절에도 신하들의 당쟁에 시달려 뚜렷한 치적을 남기지 못했다. 병약했던 경종은 1724년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하고 승하하였다.
주소 서울 성북구 화랑로 32길 146-20 ㅣ 전화 : (02) 964-0579
사랑하는 계비 신덕왕후를 위해 만든 '정릉'
태조는 계비 신덕왕후를 매우 사랑하여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궁에서 가까운 곳인 황화방(현재의 정동)에 웅장하게 능을 조영하였다. 하지만 태종이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르는 절차를 밟은 뒤 계모인 신덕왕후의 능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이에 태조는 애써 조성한 사랑하는 아내의 능이 초토화되는 것을 보고 남몰래 눈물지었다고 한다.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아리랑로 19길 116 ㅣ 전화 : (02) 914-5133
조선 정치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성종의 '선릉'
성종은 1457년(세조 3년) 7월 태어났다. 삼촌인 예종이 즉위 14개월 만에 승하하고, 1469년 11월 그 뒤를 이어 임금으로 즉위했다. 성종은 유교적 통치의 전거가 되는 법제를 완비하고, 왕권을 안정시키는 등 재위 25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다.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는 세조의 유교에 따라 세조의 광릉 이후 조영된 왕릉에는 세우지 않았던 병풍석을 성종의 봉분에는 다시 세웠다.
반정(反正)으로 왕이 된 중종의 '정릉'
정릉은 조선 11대 왕 중종의 능이다. 중종은 10대 왕이었던 연산군의 이복동생으로, 1488년(성종 19년) 3월 5일 태어났다. 1494년(성종 25년) 진성대군에 봉해졌다가 1506년에 중종반정에 의해 조선 11대 왕으로 추대되었다. 중종에게는 3명의 왕후와 7명의 후궁이 있었으나 사후에는 어느 왕비와도 함께 있지 못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능인 선릉 옆에 홀로 묻혔다.
주소 서울 강남구 선릉로 100길 1 ㅣ 전화 : (02) 568-1291
조선의 왕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태종의 '헌릉'
헌릉은 3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의 쌍릉이다. 태종은 태조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1367년(고려 공민왕 16) 5월 16일 태어났다. 1383년(고려 우왕 9) 문과에 급제하여 밀직사대언이 되었는데, 조선의 왕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왕이다.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를 도와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웠지만,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와 정도전 등과 대립하여 세자 책봉에서 탈락하였다. 결국, 2번의 왕자의 난을 일으켜 1400년 11월 왕위에 올랐다. 헌릉은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이다. 병풍석의 규모와 확트인 전경, 정자각 중심의 제향공간과 능침공간 사이의 높이 차이 등 초기 조선 왕릉의 위엄성을 잘 드러내주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세도정치에 시달린 순조의 '인릉'
인릉은 조선 23대 순조와 비 순원왕후의 합장릉이다.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형 문효세자가 1786년 요절하자, 1800년(정조 24) 7월 11세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1804년(순조 4) 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순조가 친정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돼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수해와 전염병 등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순조는 34년의 재위 동안 세도정치에 밀려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발휘하지 못했다.
주소 서울 서초구 헌인릉길 34 ㅣ 전화 : (02) 445-0347, (02) 3412-0118
뒤주에서 숨진 추존왕 장조의 '융릉'
장조는 조선 21대 영조의 둘째 아들이자 22대 정조의 생부이다. 어려서부터 왕세자로서의 뛰어난 면모를 갖춰 부왕인 영조의 기대는 매우 컸다. 그러나 1749년(영조 25) 1월 23일 영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 후, 노론 및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모함으로 영조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영조가 내린 자결의 명을 따르지 않다가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숨졌다.
조선후기 개혁과 대통합을 실현한 정조의 '건릉'
정조는 장헌(사도)세자(추존 장조)와 혜경궁 홍씨(추존 현경의왕후)의 둘째 아들로, 1759년(영조 35) 8세의 나이로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1775년(영조 51)부터는 대리청정을 시작하였으며, 다음 해 3월 즉위하였다. 왕권을 위협하는 노론 벽파 일당에 대한 숙청을 단행하는 한편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또 실학을 발전시켰으며, 조선 후기의 문예 부흥기를 가져왔다. 19세기 왕릉 석물 제도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융릉과 건릉은 정조 때의 문운이 융성하던 기운과 양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소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 ㅣ 전화 : (031) 222-0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