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준 그책 대표

가깝게 알고 지내는 작가로부터 최근 왁스 캔버스 소재의 아담하고 튼튼한 가방을 선물 받았다. 선물이란 생일이나 기념일보다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받는 것이 더욱 뜻깊다는 그의 말을 되새기고 있자니 받는 이 이상으로 주는 이의 설렘과 만족까지 고려한 것이야말로 선물의 진정한 의미라는 생각이다. 비단 실체가 있는 물건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마음가짐만으로도 너무나 고마운 선물이자 위안이 될 텐데 사회생활 하면서 실제로 그런 분을 만나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다.

선물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두세 편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나인 하프 위크'다. 벼룩시장에서 마음에 든 스카프를 발견하고도 가격이 맞지 않아 포기하고 돌아서는 엘리자베스(킴 베이싱어)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존(미키 루크)이 엘리자베스가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스카프를 펼치면서 그녀의 목덜미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신은, 상영 시간 내내 세련되고 감각적인 성애 묘사가 속출했지만 영화 전편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고 에로틱한 장면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런 경험은 한 개인에게 평생의 태도를 결정짓게 할 정도로 오래간다. 졸업 기념이라며 아나스타샤에게 붉은색 아우디를 사주는 그레이 같은 남성도 현실 세계에서는 엄연히 존재하겠지만 선물의 철학만큼은 존에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덴마크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노인이 된 두 자매를 모시고 살던 여인이 어느 날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고도 본국인 프랑스로 돌아가는 대신 마을 사람들의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친다는 내용의 영화 '바베트의 만찬'은 인간이 타인을 향해 베풀 수 있는 지극한 마음을 덤덤하게 보여준 걸작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다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기적은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소중한 일부를 기꺼이 내어준 이를 생각해서라도 전심전력을 다해 살아갈 일이다. 오직 그것만이 우리가 고마운 은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