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열두 살에 술을 마시기 시작해 곧 알코올 중독이 됐다. 밤이슬을 맞으며 길거리에서 쌈박질을 하고 다녔다. 학교는 비슷한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장소였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 고개를 돌렸다. 호주 빈민촌의 다 허물어진 집에 살았지만 골퍼의 꿈을 키워 주던 아버지가 위암으로 죽자 소년은 궤도를 이탈했다.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3번 우드로 아들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고 없는 살림에도 주니어 아카데미에 다니게 해주던 아버지였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아들을 살리겠다며 집을 팔고 삼촌에게 돈을 꿔 골프 코스와 기숙사가 있는 인터내셔널 스쿨로 데이를 보냈다. 그곳 친구에게 빌려 본 한 권의 책, 타이거 우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소년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일랜드계 호주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흑인 아버지와 태국인 어머니를 둔 우즈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17일(한국 시각) PGA 챔피언십에서 2타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한 제이슨 데이는 이날 버디 7개, 보기 2개로 최종 합계 20언더파 268타를 기록하며 올 시즌 메이저 대회 3승을 노리던 조던 스피스(미국)를 3타 차로 제치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20언더파는 그의 우상인 우즈가 2000년 브리티시오픈에서 기록한 19언더파 기록을 뛰어넘은 메이저 대회 최다 언더파 우승 기록이다. 데이는 이 대회 우승자에게 주는 워너 트로피와 상금 180만달러(약 21억원)를 받았다.

호주 선수 제이슨 데이 '20언더파' 메이저 역대 최저타 신기록

PGA투어 5승째를 올린 데이는 최근 몇 년간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이 없는 가장 뛰어난 선수'라는 달갑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2011년 마스터스와 US오픈, 2013년 US오픈에서 준우승했고 메이저 대회 10위 안에 9차례나 이름을 올렸지만 마지막 순간 무너졌다. 올해 US오픈과 브리티시오픈에서도 3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다가 우승에서 멀어졌다.

불운도 겹쳤다. 2013년 11월에는 태풍으로 필리핀에 살던 친척 8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아픔을 겪었다. 또 올해 6월 US오픈에서는 2라운드 경기 도중 현기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있었다. 2010년부터 '양성발작성 두위현훈증'이라는 병을 앓는 그는 몸이 보내는 위치 신호를 뇌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앞이 캄캄해지고 어지러운 느낌이 종종 든다고 한다.

제이슨 데이가 PGA챔피언십 우승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AP 뉴시스)
제이슨 데이가 우승 직후 자신의 아들을 안고 관중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AP 뉴시스)
우승 직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아내와 입맞춤하는 제이슨 데이. (AP 뉴시스)
우승 직후 환호하는 제이슨 데이를 조던 스피스(왼쪽)가 쳐다보고 있다. (AP 뉴시스)
제이슨 데이가 세컨드홀에서 티샷을 날리는 모습. (AP 뉴시스)
우승 직후 그린위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는 제이슨 데이. (AP 뉴시스)

이번이 21번째 메이저 대회 도전이었다. 데이는 "다른 선수도 아니고 메이저 대회에 강한 스피스와 동반 라운드를 한다고 생각하니 또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패배할 것만 같아 불안했다"고 했다. 하지만 호쾌한 장타에 핀을 보고 쏘는 도전적인 골프 스타일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16번홀(파5)에서 314야드짜리 드라이버 샷을 날린 뒤 4번 아이언으로 그린 프린지에 공을 보낸 뒤 대기록을 작성하는 버디를 추가했다. 17번홀(파3)에선 데이가 먼 거리 퍼트를 홀 가까이 붙이자 스피스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멋진 장면이 나왔다.

18번홀(파4) 챔피언 퍼트를 하기 전부터 데이의 얼굴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승을 확정한 뒤 15년 전 어머니가 보내 준 기숙학교에서 만난 이후 스윙코치이자 멘토 그리고 캐디로 인연을 이어온 콜린 스왓톤과 부둥켜안았다. 스승도 눈물을 쏟았다. 6년 전 오하이오주의 작은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다 데이와 인연을 맺은 두 살 연상의 아내 엘리도 그린 바깥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세 살배기 아들 대시가 그린 위로 달려왔다. "아빠, 언제 집에 가?" 와락 아들을 안아 올린 데이가 다시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호주에서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남편은 아들이 우승한 것을 보고 하늘에서 재주넘기를 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준우승을 차지한 스피스는 1953년 벤 호건과 2000년 타이거 우즈에 이어 세 번째로 한 시즌 메이저 3승을 거두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날 17위를 기록한 로리 매킬로이(9언더파·북아일랜드)를 제치고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2009년 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양용은은 공동 48위(1언더파)였다.

[제이슨 데이, 캐나다오픈서 짜릿한 역전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