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가 기준과 원칙에 따라 신중하고 엄정히 이뤄지게 했다."
13일 법무부는 광복 70주년 특별 사면·복권·감면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13쪽 남짓한 보도자료에 '기준과 원칙'이라는 문구가 7번이나 등장한다. 정부는 특히 경제인 사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최근 6개월 내에 형이 확정됐거나 형 집행률이 부족한 사람,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비리를 저지른 사람, 벌금·추징금을 미납한 사람을 사면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했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쪽지사면'이 없는 유일한 사면이었다"고 자평(自評)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면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기준대로' 이뤄진 사면이었다고 하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우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비교해보자. 2008년 한 차례 사면을 받은 전력이 있는 최 회장은 형집행면제로 풀려난 반면, 1995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사면받았던 김 회장은 사면 대상에서 빠졌다. 사면 횟수가 1번이면 되고 2번이면 안 된다는 '기준'이 아주 오래 전에 있었는진 몰라도, 법조계에선 "이번에 적용한 기준 같다"는 말이 나왔다.
형과 달리 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경우는 더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별다른 전과 없는 초범(初犯)인 데다 사면 혜택을 받은 적도 없다. 가족 두 명을 동시에 사면할 수 없다는 기준이 적용된 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2년 전 형제가 모두 구속된 것을 보면 '가족 동시'를 기준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구자원 회장 등 LIG그룹 3부자(父子)는 '기업어음(CP) 발행 사기로 인한 피해자가 많다'는 이유 때문에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마디로 '죄질'이 나빴다는 얘기다. 하지만 '죄질'은 객관적 기준을 만들기가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그래서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 동의를 얻을 필요도 없다. '측근 사면'과 형(刑)이 확정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사람이 사면을 받아 비판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라는 말로 사면의 명분을 대신했고 또 그렇게 납득하고 넘어갔다. 특사는 대개 정치·정무적 판단에 따라 대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100% 적용 가능한 기준이라는 게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 사면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해보려는 대통령 참모들의 정치적 수사(修辭)는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차라리 "경제인을 제외하고 싶었지만 재계 3위의 역할을 기대해서 한 명만 사면했다"고 해도 비난할 근거는 없다. 애매한 '기준'은 없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