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를 놓치면 안 됩니다. 학교 시험 걱정 없을 때 마음껏 진도를 뽑아야지요."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수학 학원. 20㎡(약 7평) 남짓한 방에 앉은 상담원 2명은 쉴새 없이 걸려오는 전화 응대에 여념이 없었다. "내년부터 중학교 3년(6학기) 가운데 1개 학기는 학교 시험을 안 본다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는 학부모들의 질문에, 상담원 김모씨는 "학교 시험 부담이 줄어들었으니 이때가 제대로 학원에 다닐 때"라고 했다. 김씨는 "이날 평소보다 3배나 많은 전화가 쏟아졌다"며 "방문상담 예약이 다음 달까지 꽉 찼다"고 했다.

이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중학생의 학업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내년부터 자유학기제를 전면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날이다. 하지만 '한국 사교육의 중심'으로 꼽히는 대치동 등 강남 학원가는 더 분주해졌다. 정부의 자유학기제 방침 공표에 발맞춰 '다른 아이들이 놀 때 공부해야 한다'며 학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의도와 현장은 거꾸로 가는 셈이다.

현 정부의 핵심 교육 공약인 '중학교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3년(6학기) 중 한 학기 동안은 중간·기말고사 등 지필(紙筆) 시험을 보지 않고 체험 활동 수업 등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서울에선 총 384개 중학교 가운데 60%(230개)가 올 2학기에 자유학기제를 시범 시행하고 내년부턴 전국 3200여개 모든 중학교로 확대된다.

본지 기자가 지난 6일부터 이틀간 대치동 등 강남 일대 학원 10곳서 상담을 받아보니 6개 학원이 이미 자유학기제 대비 강좌를 시행하고 있었다. 나머지 4개 학원도 "곧 관련 커리큘럼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대치동 학원가 관계자는 "자유학기제 강좌의 핵심은 '선행(先行)학습'"이라고 했다.

대치동의 A 수학학원은 자유학기제를 시범 운영하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위해 8월부터 '자유학기제 수학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 수업은 중간·기말고사 기간에 1달씩 휴강하지만, 이 과정은 자율학기제에는 시험이 없다는 점을 노려 쉬지 않고 수업을 진행한다. 학원 관계자는 "한 학기면 고 1 수학과정을 두 번 훑을 수 있어 수학 실력을 다질 좋은 기회"라고 했다. '집중 자유학기제' 강좌를 4월부터 운영 중인 대치동 B 영어학원은 최근 문의가 급증해 기존 2개 강좌를 4개로 늘릴 예정이라고 했다. 지방 학생들을 위해 온라인 전용 강좌를 준비 중인 학원도 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학부모 전모(여·42)씨는 "내년에 중학교 입학하는 아들이 맘 놓고 놀까 봐 걱정"이라며 "주위 학부모 대부분이 '자유학기제 코스'에 등록시키거나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대오교육컨설팅 오기연 원장은 "다른 학생들과 격차를 벌릴 기회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학원에 몰리면서 자유학기제 전용 강좌를 일부 운영해온 대치동 학원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일명 '선행학습금지법'이 시행에 들어가 학교에선 해당 학년을 넘어선 교과 내용은 가르칠 수 없다. 학원은 선행학습 금지 대상에선 빠졌지만, 선행학습을 한다고 광고를 할 순 없다.

하지만 자유학기제 시행을 계기로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학원들의 광고는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학원 사이트에 '자유학기제'를 설명하는 글을 올려놓고 "자칫하면 학습과 멀어지기 쉬운 시기" "아예 평가가 없다는 건 절대 아니다" 등의 문구를 넣어 학부모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단속 인원이 부족해 '자유학기제 마케팅'을 막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학원으로 이탈하는 학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자유학기제의 취지를 최대한 설명하고 과정을 빈틈없이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