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수용 시설에 계신 분들에게 교육과 훈련 기회를 주면 충분히 사회 안에 나와서 여러분처럼 살 수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독립운동을 하셨듯이 그 친구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운동, 그런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천노엘 신부)

"종교 창시자들의 가르침은 똑같습니다. 소외되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에게 베풀라는 것입니다. 상 주신 분에게도 감사하지만 오늘의 저를 만들어주신 히말라야 오지의 많은 스님과 마을 주민들에게 더욱 감사합니다."(청전 스님)

제19회 만해실천대상을 받은 무지개공동회 대표 천노엘(83) 신부와 청전(62) 스님이 12일 시상식장에서 밝힌 수상 소감이다. 두 수상자는 종교인으로서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만해마을 내 한용운 동상 앞에 선 만해실천대상 수상자 천노엘(왼쪽) 신부와 청전 스님. 천 신부는 청전 스님에게 “인도 가신 지 29년째라고요? 전 내후년이면 한국 온 지 60년”이라며 “앞으로 30년은 더 계시라”며 웃었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를 모시는 청전 스님은 매년 여름 히말라야 라다크의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며 영양제, 비타민, 돋보기, 보청기를 나눠주길 20년이 넘었다. 1957년 한국에 온 천 신부는 광주광역시에서 1981년부터 그룹홈과 복지관, 일터를 마련해 발달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돕고 있다. 두 수상자는 12일 만해마을에서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슬픔

천 신부와 청전 스님을 이국 땅에 붙들어 맨 것은 슬픔 혹은 연민 때문이었다. 송광사로 출가한 청전 스님은 당초 3년만 머물 작정으로 1987년 인도에 갔다. 달라이라마와 테레사 수녀를 만난 그는 특히 라다크 지역의 가난한 사찰을 보고는 발걸음을 돌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다람살라에 살면서 여름철이면 라다크를 찾아 신발, 옷, 경전 읽을 때 쓸 돋보기, 영양제, 젖소를 사서 나눠주고 있다. "한번은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약을 드리고 '오래 사시라'하자 갑자기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유를 묻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너무 힘들었고, 남편과 자식마저 잃은 지금 오래 사는 것은 괴롭다'고 했습니다. 마침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양 여성 둘이 나중에 저를 찾아왔어요. 외투와 반지, 귀고리 등을 내놓으며 '저 할머니를 돕는 데 써달라'고 했습니다."

천노엘 신부 역시 의사 표현도 쉽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의 삶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천 신부는 "수용 시설에서 그룹홈으로 나왔던 분들이 적응하지 못해 다시 수용 시설로 돌아갈 때, 부모가 장애를 가진 자식을 부끄러워하며 집안 잔치에 데려가지 않을 때 슬프다"며 "결핵도 약을 쓰면 낫는데 이렇게 가족, 친지에게 받은 상처는 낫지를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쁨·보람

"작업장에서 일하는 청년이 명절을 앞두고 5000원을 받아갔습니다. 원래 돈 개념이 없던 청년이었어요. 그런데 명절 후에 그 친구 아버님이 찾아오셨어요.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씀이 '아들이 엄마 스타킹과 내 담배를 사왔다'는 거예요. 자식이 네 명인데 나머지 셋은 대학 나와서 취직해서 살고 있는데 정작 명절날 선물 사온 것은 장애가 있는 그 아이뿐이라고 말이죠."(천 신부)

청전 스님 역시 영양실조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장애를 얻었던 아이들이 약을 먹고 학교를 다니게 돼 나중에 후원금을 챙겨올 때 눈물이 난다고 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향후 계획 쪽으로 옮겨갔다. 먼저 천 신부가 '포문'(?)을 열었다. "저는 (하느님께) 20년 연장 신청했어요."(천 신부) "그럼 100살이 넘으시는데 그때까지 일하시려고요? 저는 이제 차차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생각했는데요."(청전 스님) "인도 생활 29년째라고 하셨죠? 저는 곧 (한국에 온 지) 60년 돼요. 스님도 앞으로 30년은 더 (인도에) 계셔야죠."(천 신부)(웃음) 두 사람은 "앞으로도 사회에서 외면받는 분들을 위해 계속 노력하자"고 의기투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