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아베 담화에 '식민지 지배' '침략' '통절한 반성' '사죄' 등 무라야마 담화의 네 가지 핵심 키워드를 담을 거라고 10일 일본 NHK가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아베 총리가 끝까지 마시기 싫은 잔을 마시기로 한 결정"이라고 외교 전문가들이 말했다. 아베 총리는 왜 그 잔을 마시기로 했을까.
아베 총리가 2년차 초선 의원일 때 무라야마 담화가 나왔다. 당시 일본 국회가 무라야마 담화와 별도로 전후 50주년을 맞아 역사를 반성하는 결의안을 냈다. 아베 총리는 표결에 불참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는 그 일을 두고 "본심이 드러난다"고 했다(본지 4월 23일자).
아베 총리는 관방장관 시절(2006년)에도 무라야마 담화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재집권 이후엔 자기 색깔이 더 선명해졌다. 그는 올해 4월 후지 TV에 출연해 "역대 내각과 똑같은 말을 '복사해서 오려붙이기' 하려면 담화를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지난 6월에는 아베 담화를 정부 공식 의견이 아닌 총리 담화 형식으로 내고, 대신 자기 특유의 색깔을 드러내는 방안을 구상했다. 이 구상은 자민당 보수파와 연립 여당 공명당이 다 같이 반대해 무산됐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그가 정말 생각을 꺾었다면 세 가지가 작동했다"고 했다.
첫째, 다른 모든 분야에서 아베를 지지해온 일본 최대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6일 사설을 통해 "아베 담화에 사죄의 표현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둘째, 일본 보수의 거목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10일 마이니치신문에 "(식민지 지배 등으로) 민족이 입은 상처는 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썼다. 셋째,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가 "한·중에 사과의 뜻이 전해지는 담화를 내달라"고 했다.
박 교수는 "요미우리신문과 나카소네 전 총리가 나섰다는 건 일본 사회의 메인 스트림이 아베 총리에게 '이제 그만'이라고 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공명당의 경우 아베 총리가 공명당이 무서울 건 없지만 안보 관련 법 처리 과정에서 공명당의 도움이 컸고 앞으로도 파트너십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끝까지 보고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현 일본 정부가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일본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출발시키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조세영 동서대 교수는 "아베 담화를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지켜보되 일이 끝나면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조 교수는 "일본을 향해 '한·일 관계의 큰 원칙을 지키라'고 명확하게 밝힌 뒤 일본이 그걸 지키지 않으면 손해라고 느끼도록 우리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