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는 그저 별종으로 통했다.
좌완 정통파 투수가 시속 120~ 130㎞대 직구를 앞세워 마운드에 선다는 것 자체가 화제였다. '느림의 미학'으로 유명한 두산의 유희관(29·사진)이 프로야구 1군 무대 생존을 넘어 16년 만의 대기록에 도전한다. 그는 지난 9일 잠실 LG전에서 15승을 달성했다. 앞으로 5승을 더하면 국내 투수론 1999년 정민태(당시 현대) 이후 16년 만에 20승 고지를 밟는다. 유희관이 고정관념을 깨고 올 시즌 리그 최고 투수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체감 스피드가 다른 직구
"구속에 맞춰 스윙하면 무조건 당해요."
유희관의 직구를 상대한 타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공은 스피드건에 찍히는 수치보다 빠른 느낌"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내 프로야구 공식 기록 업체인 스포츠투아이의 'PTS(pitch tracking system·투구 추적 시스템)'로 그의 직구를 분석한 결과 타자들이 느끼는 스피드가 남다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구속은 120㎞ 중·후반대인데 회전 수는 140㎞대 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보통 타자들은 공이 홈플레이트에 도달하는 시간과 궤적을 예측해 스윙한다. 시간은 구속, 궤적은 회전 수와 관계가 있다. 구속이 높으면 공이 빨리 홈플레이트에 도착하고, 회전 수가 많으면 공의 부력(浮力)이 커 낙폭이 적다. 대부분의 투수는 구속과 회전 수가 비례한다. 평균 구속 141.56㎞인 양현종(KIA)은 회전 수가 38.9회에 이른다. 그런데 평균 127.41㎞인 유희관의 직구 회전 수는 양현종과 비슷한 38.3회다.
흔히 이런 종류의 공을 '볼끝이 좋다' '공이 무겁다'고 부른다. 오승환(현 한신 타이거스)의 주무기로 통하는 '돌직구'가 대표적이다. 150㎞를 넘나드는 그의 직구는 회전 수가 40 후반이다. 오승환은 강한 악력으로 찍어 누르는 듯한 그립으로 공을 던지는 게 비결이었다. 유희관은 몸을 최대한 홈플레이트 쪽으로 끌고 나오는 투구 폼과 남다른 손가락 감각이 묵직한 공을 던지는 원동력이다.
유희관은 "어릴 때부터 농구·볼링·탁구 등 손으로 공을 다루는 운동을 다 잘했다"며 "농구는 프로농구 서울 SK에서 뛰는 김선형과 자유투 대결을 하면 대부분 이긴다"고 말했다.
◇정교한 제구와 오프스피드
그의 투구 위력을 배가하는 또 다른 무기는 정교한 컨트롤이다. 안지만(삼성) 등 다른 투수들이 "제구력은 유희관을 따라갈 선수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정도다. PTS를 통해 유희관 투구의 로케이션을 살펴보니 그는 타자들이 가장 치기 어렵다는 무릎 근처로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아냈다.
PTS에서 측정하는 상하 로케이션 수치는 지면을 0으로 봤을 때 공이 어느 정도 높이로 들어오는지를 나타낸다. 그의 올 시즌 스트라이크 평균 상하 로케이션 수치는 64.63㎝로 리그 좌투수 평균(69.50)보다 5㎝ 가까이 낮았다.
여기에 효과적인 '오프스피드(offspeed)' 피칭을 더했다. 오프스피드 피칭이란 구종에 관계없이 구속 차이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투구를 말한다. 유희관은 직구(평균 127.41㎞)보다 10㎞ 정도 느린 체인지업(평균 116.94㎞)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타자들을 요리했다. 유희관의 체인지업은 스트라이크 비율이 69%로 리그 좌투수 평균(63%)을 넘는다. 여기에 릴리스 포인트도 직구와 거의 같아 타자로선 구종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의 체인지업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더 빛난다. 유희관이 던지는 체인지업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 헛스윙 비율이 24.4%로 리그 평균(16.6%)을 훌쩍 뛰어넘는다.
☞PTS(Pitch Tracking System)
PTS는 1·3루 및 외야 센터 펜스 쪽에 카메라를 설치해 투수 공의 궤적과 속도를 3차원으로 실측해 그 속에 담긴 데이터를 분석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의 IT 회사인 '스포트비전'이 군대의 미사일 추적 시스템을 응용해 2003년 개발했다. 국내에선 KBO리그 공식 기록업체인 스포츠투아이가 2009년 도입해 각종 분석 자료를 언론사와 일부 구단에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