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흑인 차별 항의 시위의 도화선이 됐던 '퍼거슨 사태' 1주기(9일)를 앞두고 비무장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에게 총격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흑인 사회는 "당국의 개혁 약속에도 뿌리 깊은 경찰의 인종차별이 사라지지 않았다"며 술렁이고 있다.

반면 일부 백인은 "최근 비무장 백인 청년이 경찰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백인이란 이유로 어떤 사회적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백인에 대한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미 텍사스주 경찰에 따르면, 7일 오전 1시 50분쯤 흑인 청년 크리스천 테일러(19)가 알링턴시의 GM(제너럴모터스) 매장 주차장에서 백인 경찰 브래드 밀러(49)가 쏜 총알 4발을 맞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테일러는 앤젤로주립대학 2학년생으로 학교 미식축구 선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밀러는 "강도 용의자가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을 훔치려한다"는 경비업체의 911 신고를 받고 출동해 용의자와 대치하다 권총을 발사했다. 테일러는 자신의 차로 매장 전면 유리창을 부수고 안으로 돌진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리점 측이 공개한 CCTV 동영상엔 반바지에 선글라스 차림을 한 테일러가 옥외 주차장에 세워진 판매용 차량 위로 올라가 쿵쿵 뛰고 차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치는 장면이 포착됐다.

하지만 당시 테일러가 비무장 상태인 데다 총을 쏜 경찰이 올 3월 경찰학교를 졸업한 '견습 경찰'인 것으로 밝혀져 경찰의 과잉대응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장에 함께 출동한 고참 경찰은 도망치려던 테일러에게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을 겨눴지만, 초보 경찰 혼자 총기를 발사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경찰의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킨 퍼거슨 사태 1주기를 이틀 앞둔 민감한 시기에 이번 사건이 터져 인종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다"고 전했다. 윌 존슨 알링턴 경찰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은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주의, 경찰의 부적절한 행동과 씨름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투명하게 처리하기 위해 연방수사국(FBI)에 공정한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총을 쏜 경찰 밀러에 대해선 즉각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한편 미국 사회가 흑인 청년의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달리 최근 발생한 비무장 백인 청년의 사망은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하고 있어 백인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8일 보도했다. 지난달 26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선 비무장 백인 청년 재커리 해먼드(19)가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다 경찰의 총에 맞고 사망했지만 주요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은 채 묻혔다.

당시 해먼드는 마약거래 혐의를 받는 여자 친구를 체포하려던 경찰과 대치하다 총을 맞았다. 이 여자 친구는 마리화나 10g을 소지한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해먼드 가족의 변호사인 에릭 블랜드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정부와 언론의 태도에 서글픔을 느낀다"면서 "희생자가 흑인일 때와는 너무 다르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갤럽은 "흑백 인종 간의 관계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이 15년간 최악의 상태로 악화됐다"고 밝혔다. 갤럽이 지난 6월 15일부터 7월 10일까지 백인 800명을 포함해 총 2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흑백 관계가 개선됐다'는 응답은 47%로 2001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종 관계가 나아졌다는 응답은 백인이 45%로 흑인(51%)보다 오히려 낮았다. 백인 응답률이 흑인보다 낮아진 것은 2001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이는 흑인 인권운동에 침묵해왔던 다수 백인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