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보라 기자] ‘산을 움직이려 하는 이는 작은 돌을 들어내는 일로 시작해야 한다’는 명언이 어쩌면 가수에서 연기자로 자리 잡은 박형식을 설명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다소 거창한 표현에 피식 웃음 짓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에서 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박형식의 노력과 연기 열정을 들어보면, 이 말이 그를 대변한다는 표현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다.

박형식은 지난달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상류사회’에서 지위·명예·재산 등 모든 것을 갖춘 재벌 유창수를 연기했다. 지난해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현실의 벽에 무릎 꿇은 백수 차달봉으로서 청년의 아픔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란 백화점 본부장으로 변신했다. 전작의 밝고 쾌활한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얼굴이었다. 박형식은 한층 발전된 감정 연기를 보여주면서 ‘아기 병사’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캐릭터를 맛깔나게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 아이돌 가수가 연기하는 것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개그맨이 어색한 연기를 보여주며 자신을 아이돌이라고 지칭해 희화화한 것만도 그렇다. 배우들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자신만의 매력을 보여줘야 비로소 ‘연기돌로 성장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박형식은 이같은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전적으로 아이돌 가수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박형식은 3일 오전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저는 가수로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다. 저를 포함해 많은 아이돌이 연기를 도전하는 것에 좋은 시선, 혹은 나쁜 시선이 있지 않나. 하지만 그것은 아이돌이 느껴야할 책임감이다. 좋지 않은 시선을 만든 것도, 바꿔야할 사람도 우리다. 기회를 얻었다면 그 자리에서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숙제인 것 같다”고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2010년 제국의 아이들로 연예계에 데뷔한 박형식은 이듬해 뮤지컬 ‘늑대의 유혹’에 출연하며 일찍부터 연기에 관심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배역의 크기에 욕심을 내지 않았고, 오로지 연기가 좋아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뮤지컬과 드라마를 꾸준히 오가면서 연기력을 키웠다. 드라마 ‘시리우스’·‘나인’의 아역부터 ‘상속자들’·‘가족끼리 왜 이래’의 조연을 거치며 존재감을 높였다. 그러다 ‘상류사회’를 통해 내공을 터뜨리며 배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제가 만든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웃음) 드라마가 돋보이기 위해서는 모두가 같이 잘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서로의 캐릭터가 산다고 생각했거든요. 성준, 유이, 임지연 씨가 제가 아무렇지 않게 대사를 해도 잘 받아주셔서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죠. 호흡이 안 맞으면 연기가 살지 않는데 덕분에 제 캐릭터가 잘 살았죠.”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제국의 아이들 박형식이 아닌 배우 박형식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엄마 역의 정경순, 친구 최준기 역의 성준, 파트너 장윤하 역의 유이, 연인 이지이 역의 임지연과 만날 때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극 초반 철저한 계급 의식에 젖어있던 그는 소탈한 지이를 만나면서 신분을 버린 인간적인 캐릭터로 진화했다.

박형식은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드라마 촬영 전부터 체력 관리와 발성 및 발음을 연습하며 자신을 지운 것.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한층 활기를 띤 목소리와 표정으로 얘기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내가 과연 본부장 역할을 어색하지 않게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들었어요. 아기 병사나 차달봉으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아서 29살의 어린 본부장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대본과 책을 읽는 연습을 몇 달 간 계속 했어요. 그랬더니 말투가 변하더라고요. 정말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박형식은 그러면서 “제 친구들은 제 연기를 차마 눈뜨고 못 보겠다고 놀리더라고요. 아무래도 장난치고 노는 막역한 사이니 본부장의 닭살 돋는 모습이 제가 아닌 것처럼 낯설었나 봐요”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박형식은 현재 연애보다 일에 대한 마음이 더 크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연애를 할 생각도 있지만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 “저는 지금은 일이 더 중요해요. 해내야하는 목표가 있다 보니 만남이 쉽지 않은 것도 있죠. 기회가 되면 연애를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조심스러워요. 매력이 있는 여성을 만나고 싶어요.”

박형식은 반드시 어떠한 배우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이 없다. 연기가 좋아서 시작했고, 즐기면서 다양한 역할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 작품에서는 일명 ‘개본부장’ 유창수의 모습을 없애는 게 하나의 목표다.

"저는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많은 분들이 저를 사랑해주시고 다음 작품을 기대해주시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걸요?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몰두하는 게 저의 꿈이에요. 다음 작품에서 유창수의 모습을 말끔히 지워내는 게 저의 목표랍니다.(웃음)" /purplish@osen.co.kr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