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독자들의 질문을 받아 진행된 원희룡 제주지사의 ‘차세대 국가지도자에게 묻습니다’ 인터뷰 질의 응답 전문. 괄호 안은 해당 질문을 한 조선닷컴 독자의 아이디.

원희룡 제주지사.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 한나라당 사무총장·최고위원을 지냈고, 현 제주지사로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분류되고 있습니다. 양지(陽地)에서만 자라온 인생 아닌지요.(kihewon)
→섭섭한데요. 스펙 때문에 그런 건가요? 오히려 굴곡이 심했죠. 치열하고 용광로와 같은 삶의 연속이었어요. 검정 고무신 세대구요. 제주음식 중에 고구마를 썰어 말린 일명 '빼때기'라고 있습니다. 그게 제 도시락일 때가 많았죠. 대학가서는 민주화운동, 노동운동에 투신했었고, 일당 2900원을 받으며 철공소에서 일해 봤습니다. 정치는 서로 편 가르고 증오하는 사회를 극복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마음이 출발점이 되어 입문했는데요. 기존의 보수 세력이 좀 더 개혁성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했지만, 서울시장 후보 경선, 당 대표 선거에서 줄줄이 쓴 맛을 봤습니다.

▲다른 정치인과 구별되는 본인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sjj10064115)
→저는 이 시대 보수는 낡은 틀을 혁신하는 개혁 보수, 대결이 아니라 공존을 실현하는 따뜻한 보수를 주창합니다. 저의 정치철학이죠. 그래서 제 스스로 시대 변화와 대립하는 보수가 아니라 앞서 수용하는 개혁적 보수로 살고 있습니다. 변화에 따른 위험을 감당할 자신감도 있습니다. 반대로 인기 영합 발언은 잘 못합니다. 그래선지 대중적인 인기는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학력고사, 사법시험 수석 합격 타이틀은 이젠 핸디캡 같아요. 하하.

▲대한민국 남자들은 국방의 의무로 인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2년 간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보상 차원에서 만기 전역자에게 1000만원의 전역 수당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평소 생각하신 다른 대안은 있으신지요.(gyuhn)
→아무리 분단 상황이라고 해도 의무만 강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병영문화의 폐단도 연장선에 있습니다. 상응하는 조치가 따라야죠. 수당지급도 좋은 의견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중·장기 직업군인제를 확대해야 합니다. 그것이 군의 전문성을 키우면서 일자리 문제 등 여러 가지 사회적 현안 해소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봐 집니다. 고용, 실업 등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 기회 상실 비용이 천문학적입니다. 직업군인제를 통해 안보, 일자리, 가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게 훨씬 득이 되지 않을까요.

▲'협치'를 내걸고 당선됐지만 올 예산안 통과 때 도의회와 갈등을 빚었고, 도내 중국 영리 병원 설립 추진에 대해서도 반대 여론이 적지 않습니다. 소통과 협업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icdi087)
→절차적인 과정에서 성급한 점이 있었다든지 이런 지적들에 대해서는 겸허하게 저 자신을 채찍질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갈등을 덮기 위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야합'이라고 할 거 아닌가요? 예산 문제는 원칙과 기준이 있습니다. 의회에서 형평성 있고 정당한 사업목적을 제시하면 수용 못할 게 없어요. 그런데 기존에 익숙한 관행대로 요구한다고 다 들어주면 어떻게 될까요. 어렵더라도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도지사가 분명한 방향을 잡고 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도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문턱은 아마 전국에서 제주도가 제일 낮을 겁니다. 마을 이장님들 같은 경우에도 저한테 편하게 전화 주시고 찾아오시고 해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십니다.

▲최근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로 새누리당도 야당 못지않은 계파 갈등을 드러냈습니다. 계파 청산 등 새누리당 혁신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favor0017)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 과정이 국민들이 보시기에 굉장히 불편했을 거예요. 대한민국의 경제라든지 문화, 국민의식은 글로벌 시대의 중심으로 근접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정치는 지난 세기의 옷을 더 껴입고 있는 형국이에요. 새로운 체제가 가동했으니까 잘 되길 바랍니다. 또 다른 면에서 계파 갈등은 여러 가지 과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혁신적으로는 부족하고, 진짜 혁신이 필요해 보입니다. 혁신은 당장의 결과보다는 미래에 대한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고정관념, 부정적 시각까지도 바꿀 수 있는 당의 체질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현재의 권력보다는 미래 세대의 국가운영과 정치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갖고 고민하는 세력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간 보수 진영에서 저는 비주류였습니다. 이제 보수가 시대정신에 맞춰가려면 제가 생각하는 정도의 개혁성은 포용하고 논의할 수 있는 깊이를 갖고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사님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장파'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이런 이미지에 만족하십니까. 또 나중에 지사 임기를 마치고 당으로 돌아갔을 때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십니까.(icdi087)
→이제 50대입니다. 소장파는 그렇고, 중진개혁파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네요. 지금은 도지사 말고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특히 국민들이 정치인의 개혁, 권력의 개혁, 선거 틀의 개혁, 정당의 개혁 등을 이야기하잖아요. 한참 뒤 이야기겠지만, 시대상황과 맞닥뜨렸을 때는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변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도 굉장히 뜨겁잖아요. 현실의 벽은 멀고도 험하지만 비정상적인 정치구도를 타파하는 것이 더 큰 대한민국이 되는 길입니다.

▲현재 새누리당엔 청와대나 당 지도부 등에 할 말을 하는 소장파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와 관련, 후배 의원들에게 조언하실 것이 있으신지요.(thox628)
→2004년 새누리당의 천막당사, 깨끗한 정치 관련법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치자금법 개정안 등이 당시 소장파들의 아이디어로 탄생했습니다. 그때 주도한 정치 혁신과 정당 개혁안들이 지금은 상당 부분 현실정치에 수용됐다고 봐요. 우리는 이제 15년 이상 됐잖아요. 지금 초·재선 의원들이 눈치 보지 말고 제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 말을 기억했으면 해요. "정권은 짧고 국민은 영원하다."

▲원희룡 지사님은 486 세대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힙니다. 여야에 포진해있는 486 정치인들에 대해선 주목 받았던 만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당과 야당 486 정치인들의 기존 행로에 대해 평가도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486 세대 정치인이 앞으로 이룩해야 할 성과는 어떤 게 있을까요?(vaidale)
→뼈저리게 돌아보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이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 지방선거, 총선 등에서 드러났듯이 투쟁 일변도의 정치 보다는 안정감과 개혁성을 가진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죠. 과거 새누리당 소장파가 정치 개혁 과정에서 동료들의 마음을 사는 데 실패했듯이 소위 486세대 정치인들도 좌우가 아니라 저 아래 있는 민심을 보고 움직여야 합니다. 486 정치인들 일부가 아직도 독재, 반독재란 낡은 이념에 집착하는 측면이 보여요. 대립과 투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공존과 상생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제주도가 중국 섬이 됐다는 불만이 있습니다. '중국인이 너무 많다', '관광객이 아니라 거주 목적으로도 너무 많이 온다', '투자이민 금액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지사님의 견해는 무엇입니까(thox628)
→'많이 온다, 그래서 싫다' 이렇게 대놓고 이분법적으로 볼 게 아니죠. 그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은 괜찮나요? 이미 한국과 중국간에는 매주 8백여편의 항공편이 오고 갑니다. 필요하다면 물길의 흐름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죠. 이를테면 인센티브 투어, 개별관광 같은 부가가치 높은 분야에 대해서는 제주도에서도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투자이민 제도를 통해 거주목적으로 오는 중국인들은 제주도 사람들보다 더 조용한 것을 선호합니다. 오히려 관광 온 중국인들 있는 쪽으로도 안 간다고 해요. 쾌적하고 조용한 제주의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일과 휴양을 모두 누리기 위해서 온 경우가 많아요. 그렇지만 왜 걱정하는지도 잘 알죠. 환경 파괴, 경제 예속, 식민지화 등 중국 위협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용적으로 깊이 검토하면서 '지속 가능한 미래 가치의 유지', '상호이익'이라는 기본 틀 위에서 '용중술' 즉, 실용적으로 가려고 합니다. 또 제대로 알고 제대로 대처해야 하잖아요. 중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생각 하에 올해 제주발전연구원에 중국연구센터를 설치했고, 중국협력팀도 도청에 새로 조직해서 교류의 폭과 질을 내실 있게 진행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진짜' 부자는 마카오 카지노를 가고, '적당한' 부자는 제주도 카지노를 찾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카지노가 제주 경제 나아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보십니까.(drop0363)
→제주는 힐링의 섬입니다. 쉬고 즐기고 에너지를 충전하고 가야 하는데 카지노에 '올인'한다면 그게 되겠어요? 그런 경우에는 우리도 마냥 좋아할 수는 없어요. 제주도에서 지금 카지노 산업 혁신을 추진하는 목적은 기왕 할 거면 제대로 산업구조를 갖추자는 겁니다. 지금 제주도에 외국인 카지노가 8개 있지만 드러나는 매출이 2억불 수준입니다. 싱가포르 2개 카지노는 56억불입니다. 우선 세금은 고사하고 매출파악도 제대로 안 되는 지금의 구조를 투명하게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국제적 수준의 관리감독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조례를 제정하고, 카지노감독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어요. 투명한 시스템이 가동되면 정상적인 카지노 매출에 대한 세금부과를 늘리고 지역경제, 국가경제에 추가로 수익을 환원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제주는 해군기지가 들어설 천혜의 장소입니다. 지사님께서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필요성에 공감하십니까. 그 동안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습니까.(wpincers)
→이 사업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일관되게 추진해온 겁니다. 완공이 올해 말로 바로 코앞이에요. 어차피 미래를 보고 가야 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이해해 주시고요. 제가 취임하고 나서, 강정마을에서 주도하는 진상조사를 제안했어요. 진상조사 결과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으면 공개적인 사과와 상응하는 조치를 하고, 주민 사법처리 결과에 대해 최선의 화합조치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입니다. 해군관사도 지어야 하는데 마을과 충돌하지 않는 방안을 제시하고 가급적이면 강정마을과 해군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도록 최선을 다해왔어요. 안 그래도 상처입고 명예회복을 절실하게 원하는 강정마을회의 바람도 지켜드리고 많은 분들이 사법처리 되셨는데, 특별사면, 마을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해야죠.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pistol1212)
→그 동안 특별법과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 등을 통해 어느 정도 4·3 규명이 이루어졌어요. 거기다 박근혜 정부에서 4·3을 국가추념일로 처음 지정했잖아요. 정말 역사적인 변화죠. 여기까지 온 것도 대한민국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아픔의 상처가 남은 분들을 배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구요. 비유가 어떨지 모르지만 1970년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희생된 유대인을 기리는 위령탑에 무릎 꿇고 묵념을 한 역사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주창하시는 게 100% 대한민국 아닙니까. 현명하게 판단하실 거라고 기대합니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한 가지만 드신다면?(hagimaru)
→통일입니다. 핵과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난 평화로운 한반도는 미래 대한민국의 가장 확실한 추진동력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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