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복 남원 도통동성당 주임신부

긴 장마가 멈춘 이른 새벽, 동쪽 창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너무도 찬란하다. 자세히 보고 싶어 창밖으로 쭉 목을 내미니 빛의 근원인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다. 단 몇 초!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눈을 감으니 오히려 더 또렷이 보이는 해. 자세히 들여다보니 태양은 그저 저 먼 우주 한 모퉁이에 떠 있는 주먹만 한 빨간 돌덩이, 그리고 더 깊이 들여다보니 우주에 떠 있는 작은 먼지일 뿐이다. 아니 태양만이 아니라 수백~수천만광년의 별들까지도 가을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그저 작은 먼지, 반짝이며 떠도는 작은 은박지 가루 같다. 수십억광년의 거대한 우주일지라도 웅장한 존재 자체 앞에서는 한낱 작은 먼지, 그것도 저 후미진 구석 한 모퉁이를 떠도는 몇몇 먼지에 불과하다. 하면 그 먼지 중의 먼지인 지구의 한 모퉁이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나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내가 사는 곳 남원에는 지리산이 있다.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 지리산으로 휴가 오라고. 그러나 그는 저 먼 추운 나라로 간단다. 그래, 그 먼 나라로 무엇을 보러 갈까? 그 먼 나라에 가면 좀 쉴 수 있을런가? 우리네 고단한 삶, 단 한순간도 멈추어 설 수 없는 이 인생 여정에서 어디로 가면 좀 쉴 수 있을까?

지금부터 8년 전에 평생 단 한 번 있는 안식년을 맞았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아프리카의 지붕 알제리 사하라 사막의 중심부 악섹크렘(Aksecklem)에 있는 은둔소에 도착했다. 해발 2800m의 고원에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 광야! 그 적막한 사막도 한 주, 두 주 살다 보니 이곳저곳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멀리 놓고만 보기에는 너무 아쉬워 어느 날 작은 배낭에 이런저런 준비를 갖추고 길을 나섰다.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가기도 하고, 비가 오면 황색 내[川]가 되는 계곡을 건너 한 걸음 한 걸음 미지의 세상을 정신없이 걸었다.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묵고 있는 은둔소는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절벽 위에 있어서 어디서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처 사막 어디에서나 나의 안식처이자 보금자리인 그곳이 환히 보였기 때문이다. 바위틈을 비집고 다녀야 하는 고된 여정이었지만 이 또한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경험, 새로운 기분, 새로운 행복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잠깐, 해가 지고 있다는 사실이 인지되는 순간 나의 모든 행복은 금세 불안과 공포로 변해버렸다. '아! 나는 이제 죽었구나! 이 먼 나라,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에서 얼어 죽게 되었구나.' 어둠이 깔려오자 갑자기 밀려드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광활한 사막이 그저 꽉 막힌 죽음의 골방처럼 느껴졌다. 사막의 생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사막의 밤은 도둑처럼 덮쳐온다. 해가 지면 곧 칠흑 같은 어둠이 온 천지를 뒤덮고 기온은 급격히 영하로 떨어져 얼어 죽을 판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온 집, 내가 가야 할 그 집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그때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멈춤'이었다. 모든 것을 멈추어야 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정확히 알아내기까지는 더 이상 한 발짝도 떼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먼저 새로운 눈, 새로운 마음으로 내 주변을 자세히, 그리고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그러기 전에 잘못 움직였다가는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우선 하늘의 별을 다시 보고, 그 별빛에 의지하여 산등성이의 모습들을 다시 보며 평소에 보았던 기억들을 더듬어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알아내야 했다. 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이 산 저 산을 수없이 걸었고 사람을 만나본 적이 이미 오래된 때라 나의 정신은 샘물처럼 맑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은 비로소 나를 쉴 수 있게 해 주었고, 가야 할 곳을 향해 떠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쉬고 싶다. 아니 쉬어야 한다. 잠깐 멈추어야 한다. 우리의 피로는 결코 삶이 고단해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이리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등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 오는 허망함·고독함·외로움 등이 우리네 삶을 맥 빠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좀 쉬어야 한다.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낼 때까지. 쉼이란 오직 이 답을 알았을 때 가능하니까.

온갖 일로 피곤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자, 이제 그만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자."(마르코복음 6장 31절) 예수님은 왜 '외딴곳'을 우리의 휴가 장소로 추천하셨을까? '한적한 곳'이야말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