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문화부 차장

서울 교보빌딩 '광화문 글판'이 명물이 된 건 한 줄 시(詩) 덕분이다. 계절과 시류를 담은 짧은 시어(詩語)가 삭막한 도심을 물들이더니 요즘엔 서울시 청사, 유명 백화점 벽면에도 시가 흐른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시를 본다. 쉽고 담백한 생활 시편(詩篇)이 스크린 도어를 도배했다. 시가 이렇게 융성했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시를 읊었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말미에 윤동주 시를 낭송했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로 시작하는 이 시의 제목은 '새로운 길'이다. 하고많은 시 중에 김 대표는 왜 이 단조로운 시를 골랐을까 의아했다. '나의 길'을 가겠다는 결의는 읽혔지만 감동은 없었다. 그마저도 이튿날 청와대 신임 정무수석을 환대하는 자리에서 '국화 옆에서'를 읊는 바람에 김이 샜다. 유승민 파동을 딛고 새롭게 도약하려는 의지를 시에 담은 건 좋았으나 선곡(選曲)이 빼어나지 못했다.

'시(詩) 정치'의 고수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였다. 10년 임기를 마쳤을 때 중국 신문들은 원자바오가 구사한 시구(詩句)를 총정리한 특집을 실었다. '어떤 각오로 일하느냐'는 청년들 질문에 "죽어서야 실 뽑기를 멈추는 봄누에와 재가 되어야 비로소 눈물이 마르는 양초의 심정으로"라고 답했다. 임기 말 가족의 축재설로 사면초가에 빠졌을 땐 "내 마음의 선한 일은 아홉 번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초나라 시인 굴원의 문장으로 결백을 토로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우리에겐 '시인 대통령'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남긴 한시가 200여편이란다. 1947년 장제스 총통을 만나러 중국으로 가던 길에 지었다는 시는 애잔하다. '전당강(錢塘江) 경승이 좋다는 말 하 많이 듣고/오늘에야 와서 보게 되는 나그네 마음/옛탑 서남쪽으로 뻗어 있는 평평한 들녘 빛이여/높은 누각 아래엔 밤낮으로 흐르는 강물 소리로다/산 주변 남으로 월나라 천년의 옛 땅이요/다리 보이는 동으로는 만리 먼 길 내 나라일세.' 시인이나 다름없던 김구 선생은 '눈 덮인 벌판 걸어갈 때/어지러이 걷지 마라/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후대 사람들의 이정표 되리니'라는 한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한다.

동양 정치인들에게 시는 갈고 닦아야 할 필수 덕목이었다. 정치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 하는 것이어서다. 서양에서도 정치학도에게 시부터 가르친다고 한다. 권력의 오만을 시심(詩心)으로 경계하기 위해서다. 요즘 정치인들도 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누구는 이육사를, 누구는 김지하를 내세운다. 윤동주가 1941년 지은 '서시(序詩)'는 정치인들 최다(最多) 애송시로 꼽힌다. 문제는 그 절명시를 가슴이 아닌 입으로만 왼다는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맹세한 정치인들이 이토록 많은데 우리 정치는 왜 이 모양이고, 국민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곤궁해지는 걸까.

시가 읽히는 건 삶이 고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쯤 대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서도 민생의 고통을 헤아리는 정치인을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