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씨는 달변에 소리통·몸짓이 큰 천생 이야기꾼이다. 그런 그도“강연 때 20대 청중은 고개 파묻고 휴대전화만 본다. 26·20세인 두 딸도‘한자가 많고 어렵다’며 아비 글을 안 본다”고 했다.

천리(天理)와 지기(地氣),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종횡한 지 만 11년, 본지 연재 칼럼 '조용헌 살롱'이 27일로 1000회를 맞았다. 동양학자 조용헌(54)씨는 "칼럼을 쓴다는 건 속옷만 입고 링 위에 올라 결투를 벌이는 일"이라고 했다.

"독자 수준이 높아서 글이 자연산인지 양식 통조림인지 딱 보면 알죠. 동서·남북·상하로 육방(六方)을 다 살피고 사실 확인을 꼼꼼히 안 하면 비판의 칼날이 뜻하지 않은 데서 닥쳐요. 글에 확 드러나니까 누군가를 미워해서도 안 되고."

1회 '이판 사판'(2004년 9월 2일자)을 시작으로 초기엔 주 3회, 2009년부터는 주 1회씩 쌓아서 이룩한 1000계단이다. 그는 '술·담배 안 하고, 사업 안 벌이고, 인터넷 모임 안 들고, 자정 전에 잠들고, 하루 1시간 반 산책하는 것'을 1000회 연재를 이끈 자계(自戒)로 들었다. 글의 수준을 유지하려면 생활 리듬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1000회 중 "적선(積善)하라. 좋은 선생 만나라. 명상하라. 독서하라. 제 팔자를 알라. 명당에 살라"는 내용을 담은 '팔자를 바꾸는 방법 여섯 가지'(7회·2004년 9월 16일자)를 호응이 가장 컸던 글로 꼽았다.

"동양학을 기반으로 현대사회나 현상을 해석하는 건 의미 있는 시도고 상당한 블루오션입니다. 수천년 이어온 주역과 풍수엔 충분한 합리적 근거가 있는 거죠." 자칫 드잡이를 부르기 쉬운 보학(譜學)과 명문가(家)도 그의 오랜 관심사다. "지명과 출신 학교를 틀린 적도 있고, 질책을 받기도 했죠. 족보를 논하는 게 워낙 민감해 아예 문중 대표한테 교정을 봐달라고도 합니다."

조씨는 원광대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고, 석·박사 학위는 같은 학교에서 고려 불교 연구로 받았다.

그는 자칭 '발품팔이 문필가'다. 연중 절반을 집 밖으로 나다닌다. "논어 구절을 응용하면 '필야 녹재기중(筆也 祿在其中)'이라, 필(筆)에서 밥이 나오는데 촉(觸)이 떨어지면 필이 무뎌지니 현장에 갈 수밖에 없죠." 그는 여행을 다니며 가설을 검증하고 경안(經眼·경전을 보는 안목)이 열리는 게 공부라고 했다. 그리스 델피 신전, 터키 카파도키아, 설악산·계룡산, 미국 애리조나주 새도나, 네팔 피시테일 성산처럼 신전(神殿)이나 영지(靈地)에서 에너지와 충만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조씨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방외지사(方外之士)'를 자임한다. 사는 집은 전북 익산에, 글 쓰고 쉴 수 있는 황토방은 전남 장성에 있고, 전국 곳곳의 문중과 친교를 맺어 어디를 가도 밥은 얻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사(道士)가 되려다 실패해 도사와 독자를 잇는 중간 브로커가 됐다"고 말하는 조씨는 "글 쓰는 데 스스로 제한은 없지만 예측하는 건 칼럼에서 안 다루려고 한다. 10개 중 7개 맞혔을 때 듣는 환호보다 3개 틀려서 받는 비방이 더 크고 '사기꾼' 소리를 들으니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