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비디오 미술가 백남준은 자신의 처지를 "군사정권에 밀려난 장면 박사"라고 한 일이 있다. 그로선 중풍에 따른 불편함과 무력감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남준 아내 구보타 시게코의 생각은 달랐다. 시게코는 "남편이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아내가 된 느낌"이라고 했다. 시게코는 병든 남편을 위해 뉴욕 한인 마켓에 김치를 사러 다녔다. 이즈음 백남준이 시게코에게 쓴 편지가 있다. '시게코, 당신은 젊어서 멋진 애인이었고 늙어선 최고의 엄마이자 부처가 됐어.'
▶사진작가 이은주는 2006년 백남준이 세상 뜬 뒤 뉴욕 소호에 혼자 사는 시게코를 방문했던 얘기를 들려줬다. 시게코는 집 안에 일본식 제단을 차려놓고 있었다. 남편의 사진을 걸고 앞에는 꽃을 꽂았다. 방 곳곳에 남편에 관한 신문 기사들을 걸어놓았다. 시게코는 남편이 떠난 공간에서 홀로 남편의 체취를 맡으며 살고 있었다. 이은주가 카메라를 들자 시게코는 "남준이 없으니 이 방에선 아무것도 찍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백남준과 시게코는 1964년 도쿄에서 처음 만났다. 시게코는 작곡 발표회를 한다면서 피아노를 때려 부수고 머리에 먹물을 뒤집어쓴 채 머리카락으로 글씨를 쓰는 젊은 미치광이 예술가에게 한눈에 빠졌다. 시게코는 발표회 후 백남준이 참석하는 파티에 자기도 초대되도록 손을 썼다. 나중에 비틀스의 존 레넌과 결혼한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가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는 얘기도 있다.
▶시게코 자신도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는 사타구니 사이에 붓을 꽂고 그림을 그리는 '버자이너 페인팅'으로 충격을 던졌다. 비록 오노 요코로부터는 "게이샤나 할 짓"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시게코를 만났을 때 이름 없고 돈 없는 예술가였던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우뚝 섰다. 장난기 많은 백남준은 때로 "아내보다 집 밖에 사랑하는 것이 많다"고 하기도 했다. 시게코도 백남준을 "연인으로선 최상이었지만 남편으로선 최악"이라고 했다.
▶한 천재성 있는 여성 예술가가 마찬가지로 천재적인 거장을 만나 가정을 이뤄 자신을 지우고 살아간다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시게코는 백남준이 이룬 성취를 부러워했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을 질투했지만 그의 예술마저 시샘할 수는 없었다. 엊그제 뉴욕에서 시게코가 쓸쓸히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시게코는 만년에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전시회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