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수리시설인 벽골제를 끼고 있는 김제평야
충남 논산에서 시작된 들판은 남쪽 아래로 군산과 익산을 거쳐 김제와 부안, 정읍 등 전북의 곡창지대까지 넓고 길게 연결된다. 이 곡창지대 중심에 김제가 있다. 김제 시청이 있는 시내는 차지하는 면적이 새발의 피일만큼 좁다. 반면 시내를 조금 벗어나기만 해도 눈 앞에 펼쳐지는 건 너른 들판뿐이다.
김제는 옛날에는 볏골(벼 고을)로 불리었고 한자를 이용해서 벽골(碧骨)로 표기되었다.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알고 살아가던 이곳에서는 물이 필수적이었다. 기본적으로는 들판을 가로 질러 서해로 빠지는 동진강과 만경강, 주변 하천이 젖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곳 김제에 우리나라 최초로 저수지에 물을 가두었다가 필요할 때 논에 물을 대던 백제 시대의 벽골제(碧骨堤)가 있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벽골제는 백제 비류왕 27년(330)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시대에 보수공사를 하면서 다소 변동이 있었으나 대체로 높이 5.7m, 폭 10~21m의 제방이 들판을 따라 약 3km에 걸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제방 중간에는 다섯 개 수문이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수문을 열어서 그 지역의 들판에 물을 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김제평야에서도 지평선을 볼 수 있다
지금은 두 개만 남아 있는 수문 중 하나가 둑길 끝에 있다. 이 수문 앞에는 통일신라 원성왕 때 제방 보수공사를 하던 토목기술자를 짝사랑하던 이곳 태수의 딸 단야의 희생적인 사랑을 애도하는 단야각이 있고 또, 조선 태종 때의 보수공사 내용을 기록한 중수비도 있다. 단야각이라는 보호각은 사랑 이야기로, 중수비는 기록으로 당시의 보수공사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곳 김제에서 바늘과 실처럼 벽골제와 함께 따라다니는 또 다른 하나가 지평선이다. 지평선은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이다. 중간에 구릉, 산 등의 장애물이 없어야 지평선을 볼 수 있다. 김제에서는 서해 바다쪽을 바라보는 들판에서 나름 지평선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중국 내륙의 들판에서, 둔황에서 우루무치까지 가는 실크로드의 모래 사막에서 질리도록 보았던 지평선을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셈이다.
후덕한 미소로 김제의 황금빛 풍요로움을 지켜주었을 마애불
김제 시내에서 금산사를 향해 가는 길에 황산이 있다. 낮은 야산이지만 산이 귀한 이곳에서는 융숭한 대접을 받을 것처럼 보인다. 정상 부근의 문수사라는 절에 마애불이 한 개 있다. 아담한 문수사는 경내가 조용해서 마음이 편해진다.
마애불은 경내 부도밭 위, 조그만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에 새겨져 있다. 바위는 인위적으로 잘 다듬어졌다. 12시 30분경, 햇빛이 바위 표면에 살포시 내려 앉는데 살랑이는 봄 바람도 덩달아 마애불 뺨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늘 속에 숨겨져 있던 마애불의 미소가 점차 환해지고 있었다. 웃는 듯한 눈썹과 눈, 낮고 넓적한 코, 통통한 두 뺨, 둥근 얼굴에서는 후덕함이 느껴진다. 누구라도 와서 소원을 빌면 너그러이 받아줄 모습이다.
주변 바위에 산신에게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글들이 몇 개 보인다. 마애불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산신에게도 기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곳 마애불은 불교와 산신 신앙이 융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마애불에서는 김제평야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보다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매년 사람들은 모를 심고 정성껏 가꾸면서 가을에는 수확의 기쁨을 노래할 것이다. 마애불은 이곳에서 이들을 바라보면서 오랜 세월동안 황금빛 풍요를 지켜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재지: 전북 김제시 황산동 6
(도로명 주소: 전북 김제시 황산5길 158)
▶답사 난이도: 쉬움(★★☆☆☆)
▶아름다운 마애불을 볼 수 있는 햇빛 좋은 시간대: 오후 12시 30분~1시 30분
▶주변 볼거리
-벽골제: 현재 벽골제는 농경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과 박물관 등 문화관광체험단지로 구성되었다. 10월 초에는 이곳에서 수확의 기쁨을 노래하는 지평선 축제가 열린다. 또, 일제시대 이곳의 평야가 무대가 되는 조정래의 소설 문학관과 마을도 주변에 함께 있어서 둘러볼 만하다.
-금산사: 모악산 입구에 포근히 안겨 있는 금산사는 백제 진표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고려 시대에 혜덕왕사에 의해 중건되면서 대가람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경내에 들어서면 웅장한 미륵전(국보 제62호), 대장전(보물 제827호) 등의 건물과 6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 5층 석탑(보물 제25호), 석등(보물 제828호), 방등계단(보물 제26호) 등 오랜 역사를 지닌 문화재들이 많다.
-귀신사: 조그맣고 아늑한 절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대적광전(보물 제826호), 3층 석탑, 석수 등의 문화재가 있다.
▶주변 문화재와 연계하면 좋을 마애불 여행 1일 추천 프로그램
-김제 문수사 마애불(오후 12시 30분-1시 30분)→벽골제(하루 중)→금산사(하루 중)→귀신사(하루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