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억만장자인 유리 밀너(53·사진)가 외계인을 찾는 연구에 1억달러(1160억원)를 기부했다. 밀너는 20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왕립학회에서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 프로젝트에 10년간 1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세티(SETI)는 전파망원경으로 외계인이 보낸 신호를 추적하는 프로젝트이다. 지능을 갖춘 생명체라면 규칙적 전파를 발송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이 프로젝트는 조디 포스터 주연의 SF영화 '콘택트'로도 대중에게 알려졌다.

밀너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의 그린뱅크 우주망원경 등 세계 3군데의 전파망원경으로 외계인의 신호를 추적하는 연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UC버클리의 앤드루 시미언 박사는 "연구비가 부족해 연간 24~36시간만 망원경을 가동할 수 있었는데, 그 시간이 수천 시간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혁명 같은 일"이라고 밝혔다. 세티 프로젝트는 1992년 미 항공우주국(NASA) 지원으로 시작됐지만 이듬해 지원을 중단해 자금난에 시달렸다. 지금은 UC버클리가 주관하는 민간 프로젝트이다.

과학계는 환호했다. 밀너는 이날 외계인 추적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한 서한도 발표했는데,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와 SETI연구소의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 등 세계적 학자들이 지지 서명을 했다. 드레이크 박사는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을 설명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을 창안한 과학자이다. 호킹 박사는 이날 "무한한 우주에는 반드시 다른 생명체가 있을 것"이라며 "(외계인보다) 더 큰 질문은 없다. 이제 그 답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밀너의 과학 연구 기부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기초물리학, 생명과학, 수학에서 획기적 성과를 낸 과학자를 선정해 시상하는 '과학 혁신상(Breakthrough Prize)'를 제정해 매년 노벨상의 두 배나 되는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그가 잇따라 과학 연구에 거액을 기부한 것은 자신이 모스크바대를 나와 옛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연구소에서 일한 물리학자 출신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란 이름도 인류 최초로 우주로 나간 옛소련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에서 따온 것이다. 그가 "외계인 추적 연구에 대한 관심은 내가 태어나던 1961년부터 시작됐다"고 농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밀너는 소련 붕괴 무렵 과학자에서 투자자로 변신했다. 1990년 미국으로 이주해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 벤처에 집중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거뒀다.

일반인도 연구에 참여할 수 있다. 우주에서 온 전파 신호를 분석하려면 엄청난 컴퓨터 작업이 필요하다. UC 버클리는 1999년부터 일반인이 이 작업에 동참하는 '세티앳홈(SETI@Home)'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세티엣홈에서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면 PC가 다른 작업을 하지 않을 때 전파 신호 분석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 밀너는 "어쩌면 일반인들이 전문가보다 먼저 외계인이 보낸 신호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밀너는 이날 100만달러 상금을 내걸고 외계인에게 인류가 어떤 존재인지 알리는 메시지도 공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