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었던 칼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을 가리켜 "역사 속 악행은 자신들의 행동이 큰 문제 없다고 인지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며 '악(惡)의 평범성'을 갈파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서도 보듯이 우리 사회의 대형 사고는 항상 누군가의 사소한 탐욕과 그에 대한 묵인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늘 알고 보면 분통이 터질 정도로 악인과 공존하며 사회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러한 피해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그러한 악을 사전에 철저히 경계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공공의 안전임에도, 일부 철강 수입 업체와 건설 회사들이 또 다른 불안을 일으키고 있다. 다름 아닌 중국산 불량 철근에 관한 문제다.

지난해엔 국내 제조업체의 롤마크(규격, 제조자 및 원산지 등 표시물)를 찍은 중국산 위조 철근이 유통돼 적발됐다. 올해도 불량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화학성분을 초과하고, 연신율(길게 늘어나는 비율)·항복강도(물체에 힘을 가해서 영구 변형이 시작될 때까지 견디는 강도)가 미달된 중국산 부실 철근을 수입하는 행위는 여러 차례 언론이 고발했다. 다행히 이에 대응해 해당 기관의 실태 조사와 행정 조치 건의가 이뤄졌고, 정부 차원에서도 중국에 재발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산 불량 철근 문제는 예삿일이 아니다. 사람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하게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현재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 사는 집의 90% 이상은 철근 콘크리트(Reinforced Concrete· RC) 구조물이다. 여기서 철근은 콘크리트의 내부에서 건물의 휨, 균열, 전단(剪斷)·인장(引張) 내력 등을 보강해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건축물은 지상에 고정된 게 아니라 지각 변동, 외부 영향 등으로 인해 쉴 새 없이 흔들린다. 이를 감안해 구조체의 경우 강도는 물론 연신, 인장성을 동반한 복원력도 보장돼야 한다. 철근의 KS인증 취득 과정이 이를 반영한다. 정확한 규격, 인장시험, 굽힘 시험, 화학성분 등의 평가를 거친다. 따라서 연신율 등 검사 등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된 중국산 철근의 사용은 절대로 불가한 것이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결함이 발견됐음에도 일부 수입 업체나 건설 회사들이 해당 제품을 리콜 또는 폐기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게다가 감리의 승인조차 받을 수 없어 준공허가가 나지 않는 게 당연한데, 아직 어떠한 현장에서도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도대체 수 억원에 호가하는 아파트를 짓는데, 안전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을 쓰는 이유는 뭔가. 이러한 행위를 통해 절감할 수 있는 금액은 아파트 한 채당 고작 60만원 안팎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수입서류 혹은 판매 송장만 대조해도 확인할 수 있는 결함제품을 끝까지 추적하지 않는 정부 측의 안일한 대응도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재산과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것뿐이다. 필자는 앞으로 소비자가 유념해야 할 사항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이재권 철근원산지표시의무화추진회장

첫째, 소비자는 아파트 계약 시 철근의 원산지(국산), KS인증 취득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불량 철근을 가려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둘째, 재건축이나 조합아파트의 경우 시공사 선정 시 본인들이 원하는 철근 제품을 계약에 명시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 건설사는 계약서 대로 이행해야 한다. 임의로 자재를 변경할 수 없다.

셋째, 이미 계약한 경우 자체 조사팀을 따로 결성해 현장에서 사용한 철근을 확인하고 관련 서류를 요청해야 한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건설사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관련 기관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가족의 보금자리인 주택을 구매하면서 건축의 핵심자재인 철근의 원산지를 확인하는 것은 소비자의 안전을 위한 당연한 권리다. 앞으로 철근 등 건축물 외관에서 볼 수 없는 자재를 자신들의 이익 기준으로 사용하는지 소비자의 안전 입장에서 사용하는지는 건설 명가의 옥석을 가려내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건설 회사가 소비자의 안전을 외면한다면 결국 소비자도 건설 회사를 외면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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