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정오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단지에 경찰관 8명이 들어섰다. 이 아파트 상가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짝퉁(가짜) 명품' 판매가 이뤄진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단속에 나선 것이다. 33㎡ 남짓한 방 안에 들어가자 명품 가방과 구두, 지갑 수십 점이 종류별로 진열돼 있었다. 제품을 구경하던 중년 여성 2명은 "단속 나왔다"는 경찰 말에 놀라 뛰쳐나갔다.
경찰 단속에 동행한 '짝퉁 감별사' 김기범씨가 제품을 들여다보더니 '가짜' 판정을 내렸다. 경찰이 곧바로 검은 비닐봉지에 짝퉁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이날 경찰이 수거한 짝퉁 20여점에는 명품 로고가 없었다. 경찰 조사에서 짝퉁 판매업자 주씨는 "동대문 짝퉁은 강남에서 씨도 안 먹힌다. 강남에선 짝퉁도 달라야 팔린다"고 했다.
강남의 짝퉁 명품은 '짝퉁 1번지'로 불리는 동대문 인근에서 유통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게 업자들 설명이다. 동대문에선 샤넬과 루이뷔통, 프라다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브랜드의 모조품이 주로 팔리지만 강남에선 '노노스(Nonos·No Logo No Design)' 짝퉁이 인기라는 것이다. 노노스는 정품에도 상품 로고가 아예 없거나 잘 보이지 않는 브랜드의 명품을 말한다. 강남구청 특별사법경찰은 지난달부터 한 달간 8차례에 걸쳐 논현·대치·도곡동 등 강남 의류 판매장 일대를 단속해 짝퉁 판매상 16명을 상표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10일 밝혔다. 압수한 짝퉁 명품은 1038점, 시가로 15억5000만원에 달한다.
경찰이 압수한 물품 가운데 벨기에 명품 회사 D사의 핸드백은 최근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 단연 인기라 한다. 정가가 500만~600만원이지만 강남 짝퉁 시장에선 80만원대에 팔린다. 로고가 없는 대신 사다리꼴 디자인과 가방 양쪽에 달린 버클이 이 제품의 특징이다.
도곡동의 한 의류 판매장 주인 이모(47)씨는 "딸 대학 입학했다고 1000만원짜리 핸드백을 척척 사주는 부촌 사람들이 남들도 다 들고 다니는 흔한 짝퉁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단속에 동행한 감별사 김기범씨는 "최근 강남에서 가격은 비싸지만 덜 알려진 명품 브랜드 짝퉁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동대문에선 노점 거리를 중심으로 짝퉁이 판매되지만, 강남 짝퉁은 부촌 아파트 고급 의류 상가나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은밀히 팔린다. 한국의류산업협회 김서중 단속팀장은 "짝퉁을 산다는 느낌을 안 주면서 대접받는다고 느끼도록 강남 고객들 취향에 맞춘 것"이라 했다. 이 매장들은 평소엔 진품을 팔면서 손님이 원할 경우에만 매장 구석에 숨겨둔 명품 짝퉁을 꺼내 판다고 한다. 강남구는 이런 짝퉁 매장이 관내에 300여곳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