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상태에 빠졌던 중국 증시가 지난 9일과 10일 이틀 연속 급등세를 보였다.최근 3주간 32% 하락했던 상하이종합지수는 9일 5. 76% 급등한데 이어 10일 4.54% 올라 3877.80에 마감했다. 패닉을 진정시키려는 정책이 효과를 보기 시작한 걸까.
중국 안팎에선 증시 패닉을 진정시키기 위한 중국 당국의 ‘사회주의식 처방’이 되레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속 발전 가능한 장기적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제 개혁이 후퇴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최근 일련의 정책을 내놓으면서 “최근 증시에 패닉정서가 형성돼 있고 비이성적 주식 매도로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에 몰렸다”는 배경 설명을 달았다.
하지만 “이번 증시 급락이 본격화되 기 직전 고점인 6월12일까지 최근 1년 간 150%(상하이종합지수 기준)가 넘는 급등세가 오히려 비이성적이다”(서창배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중국학 교수) 는 지적도 있다.최근의 증시 급락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것이다.
비이성적인 건 주가 지수 추이만이 아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중국 증시의 변동성을 진정 시키려는 증권 당국의 정책도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내용을 담고 있다.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사회주의식 방식으로 처방하는 것이나 주식 매도를 비(非)애국적인 행위를 하는 적(敵)으로 간주하고 경찰을 내세워 공안 분위기까지 조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 ‘자본주의 꽃’ 증시에 사회주의식 처방 주사
중국의 증시 대책은 사회주의식 처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장사 대주주(지분 5% 이상)와 이사와 감사 등 임원이 6개월간 자사주를 매도할 수 없도록 한다는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조치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과거 6개월 간 자사주를 매도한 상장사 대주주나 임원에게는 자사주를 되살 것을 요구했다.중국 언론에 따르면 과거 6개월간 자사주 매도금액이 5억위안 이하면 매도 금액의 10% 이상,5억위안 이상이면 매도금액의 20%이상을 되사도록 구체적인 지침까지 담았다.
주식을 사고 파는 게 자유인 시장에서 생긴 문제 해결을 위해 ‘팔지 말라’ ‘얼마 만큼을 다시 사라’는 등의 ‘간섭’이 담긴 정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사유재산권 침해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중국 당국의 개입은 사유재산에 간여하는 것과 유사하다.시장에대한 신뢰를 망가뜨릴 수 있다”(파이낸셜타임스)는 경고가 나오는 배경이다. 사유 재산권 보호를 꾸준히 확대해온 중국 정부의 경제 개혁이 이번 중국 증시 급변을 계기로 후퇴하게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2004년 헌법에 사유 재산 보호 조항을 넣고, 이어 2007년엔 이를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물권법을 제정했다. 제3세계의 빈곤문제를 연구한 페루의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소토는 '자본의 미스터리'란 저서를 통해 '왜 자본주의는 서구에서만 성공했는가'란 물음에 사유재산권이 잘 보호되는 제도의 존재여부란 답을 제시했다.
중국 경제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고성장을 누린 배경에는 암묵적인 사유재산 인정을 통해 시장 주체의 적극성을 살렸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헌법에 이어 관련 법률을 통해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게 중국 경제성장의 버팀목이 됐다는 지적도 다르지 않다.
사유재산권 보호 강화는 시장화 개혁의 일환이다. “중국 당국의 증시 안정조치들이 ‘시장이 자원배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시진핑 정부의 경제운용 원칙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시장화 개혁의 후퇴를 보여주는 조치는 이외에도 또 있다. 사회보장기금이 기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에 주식을 팔지 팔라고 통지한게 그렇다.시장 주체들이 시장 논리에 따라 자기의지대로 움직일 때 시장의 효율을 극대화한다고 전문가들은 목소리를 높인다.이번 조치로 중국 증시의 효율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 공매도 세력 타격대 이끄는 35년 베테랑 경찰,
지난 9일 베이징 금융가에 있는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에 경찰들이 들어섰다. 이들 경찰을 이끌고 온 인물은 공안부 부부장(차관)에 오른 지 13일밖에 안된 멍칭펑(孟慶豊)으로 여우사냥 2015 소조의 조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중국에선 해외로 도피한 탐관오리 등을 여우로 칭하고 이들을 소환하는 것을 여우사냥으로 칭한다.
하지만 이날 멍칭펑 부부장이 증감위를 찾은 건 여우사냥 때문이 아니다. 멍 부부장과 증감위는 ”악의적인 공매도 세력를 조사하하기 위해 협의를 벌였다”고 중국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경찰 경력 35년의 베테랑이 주식 보위전(保衛戰)에 뛰어들었다”(신징보)는 묘사도 있었다.이를 두고 중국 증시가 개장한 이후 25년 역사에서 처음 보는 진풍경이라고 중국언론들은 전했다.
중국언론들은 증시급락 와중에 주식을 매입하고 매도를 자제하는 것을 애국을 위한 용기있는 행위로 평가하고 있고,중국 SNS에는 증시 급변을 다루는 글에 군복을 입은 조작 사진을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전쟁을 치르듯이 증시 급변에 대응하는 중국 당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증시에서 국가팀이 이긴다,이겨야한다”(환추시보)는 관영 언론의 사설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증시의 변동성이 정치이슈로 변질되고 있다”(디플로맷)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는 그리스처럼 재정위기를 겪은 나라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게 현실이다. 중국 지도부가 증시급락을 경제이슈로만 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계점에 이른 ‘새장 경제론’
중국 증시 급락은 서방의 경제학에서는 모순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이 딜레마에 빠졌음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진핑은 개혁 개방을 가속화하면서도 전임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공산당이 모든 걸 영도(領導)한다는 마지노선은 그대로 유지했다. 법치주의를 선언하면서도 당이 영도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시장 위에 당이, 법 위에 당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천윈(陳雲) 전 부총리의 새(시장)는 새장(계획경제)에 가둬야 한다.'는 '조롱 경제론(鳥籠經濟論·새장 경제론)'을 떠올리게 한다. 마오쩌둥(毛澤東) 시절부터 계획경제를 진두지휘한 천윈은 1995년 사망할 때까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의 발목을 잡았던 최대 정치 라이벌이기도 했다.
새(시장)를 움켜쥐면 죽지만 새장 문을 열면 새가 날아가 버린다는 게 새장 경제론의 골자다. 시장에 대한 일정 수준의 계획경제(새장)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성급한 시장화가 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계획경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장경제를 하면서 ‘중국 특색’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과 맥을 같이한다.
지도 위에 점을 찍은 몇개 지역에서 먼저 개혁 실험을 하고 잘 되면 선으로 연결된 지역으로 확대하고 그 이후에 면에 걸친 지역으로 확장하는 덩샤오핑의 점선면 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시장의 힘이 커질수록 정부의 경제에 대한 통제력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 새장의 새가 새장을 박차고 날아 오를 만큼 시장 주체들의 힘이 강해지면 정부의 시장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줄어드는 임계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한계는 이번 증시 급락 뿐 아니라 은행 개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대출금리를 자유화 한데 이어 예금 금리도 빠르면 올해 말까지 상한선을 없앤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금리자유화는 금리 결정권을 시장주체(은행)에 넘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엔 정부가 금리 결정권을 가졌고,그 대신 암묵적으로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무한 보증을 서줬다. 정부가 ‘심판’이 아닌 ‘선수’ 역할을 한 것이다.
금리 자유화를 골자로한 은행 개혁은 은행에 권한을 늘려주는 대신 은행의 생과 사가 자기책임 하에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다.
문제는 이 같은 시장화 개혁이 중국 경기둔화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데 있다.금리 자유화 개혁은 은행들로 하여금 대출할 때 자기 책임의 중요성을 부각 시켰다. 실물 경기 둔화로 부실 채권이 늘자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잇따라 줄인 배경이다.
중국 당국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라고 은행에 ‘주문’은 할 수 있지만 ‘압박’’을 가했다가는 당국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졌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경기둔화기에 중소기업 대출 압박을 가하면 시장 주체에게 리스크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그 시장 주체에게 리스크를 키울 수 있는 지시를 내리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공산당을 긴장케 마든 시장의 ‘힘’ 원천은
중국 당국의 전방위적인 조치가 증시 안정이라는 목표를 쉽게 달성하지 못한 것은 시장의 힘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의 힘은 레버리지 거래, 파생상품, 시장개방 확대 조치 등에서 나왔다.
중국 당국이 주가지수선물과 빚내서 주식투자하는 신용거래,그리고 공매도를 허용한 게 2010년 3월이다. 지난 2월엔 상장지수펀드(ETF)를 기초로 주식옵션도 시작했다.신용거래는 이번 증시 급락 직전의 급등세를 부추긴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급증한 것도 ‘시장의 힘’을 키웠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최근 1년 내 주식을 매매한 투자자만을 기준으로 해도 주식계좌수는 9229만개로 2014년말 공산당원수(8779만명,공산당 조직부)를 웃돌았다.
전체 계좌수는 상하이와 선전증시 각각 올들어 1억명을 넘어섰다.5월말 기준 주식계좌수는 상하이증시는 1억1014만개,선전증시는 1억563만개를 기록했다. 증시가 급등하자 중국 당국이 지난 4월 1인당 1계좌 한도를 폐지하고 20계좌까지 개설할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계좌 수가 급증한 것이다.
5월 한달간 새로 개설된 주식계좌수만 1200만개에 달했다. 대학생의 31%가 주식투자에 나섰다 (미국 경제매체 쿼츠)는 추정도 나왔다.투자자의 80%이상이 개인투자자이고 상당수가 2007년 전후의 급등락세를 겪지 않은 주식 초보자라는 사실도 증시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이유로 꼽힌다.
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QFII)와 위안화 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RQFII)에 이어 지난해 11월 부터 외국인 개인들도 내국인 전용 A주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후강퉁이 시행된 것 역시 중국 당국의 ‘보이는 손’의 영향권에 들지 않는 시장 주체가 늘어난 배경이다.